신동네는 40여 년 전 서울 수유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東)자를 쓰는 동영이가 동향이 보경과 동은으로 구성된 이 신동가는 할머니와 함께 3대 7인 가족의 대가족이 마치 동네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들꽃 같던 할머니, 사임당의 목련 같은 엄마, 밤송이처럼 좋지만 가시도 있는 아빠, 풍성한 열매 같은 큰딸, 희귀한 약효를 품은 둘째, 탄탄하고 가장 따뜻한 셋째, 세상을 내려다보는 곰 수컷 자태(곰 자태)를 닮은 막내-신동네는 어쩌면 태몽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가족 간의 그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 가족애 아빠의 세상살이 이야기 – 세상 사랑 그리고 하늘을 향한 신앙 이야기 – 하늘 사랑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 정성껏 준비한 한국의 식탁입니다. 전기난로만큼 뜨겁지는 않더라도 화로처럼 곁에 두고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과 인내와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email protected] / 010-9220-8009>1部; 가정애 (1~208면) 2부; 세계사랑 (211~286면) 3부; 하늘사랑 (289~339면) 신동네는 40여 년 전 서울 수유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東)자를 쓰는 동영이가 동향이 보경과 동은으로 구성된 이 신동가는 할머니와 함께 3대 7인 가족의 대가족이 마치 동네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들꽃 같던 할머니, 사임당의 목련 같은 엄마, 밤송이처럼 좋지만 가시도 있는 아빠, 풍성한 열매 같은 큰딸, 희귀한 약효를 품은 둘째, 탄탄하고 가장 따뜻한 셋째, 세상을 내려다보는 곰 수컷 자태(곰 자태)를 닮은 막내-신동네는 어쩌면 태몽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가족 간의 그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 가족애 아빠의 세상살이 이야기 – 세상 사랑 그리고 하늘을 향한 신앙 이야기 – 하늘 사랑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 정성껏 준비한 한국의 식탁입니다. 전기난로만큼 뜨겁지는 않더라도 화로처럼 곁에 두고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과 인내와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email protected] / 010-9220-8009>1部; 가정애 (1~208면) 2부; 세계사랑 (211~286면) 3부; 하늘사랑 (289~339면)
3. 하늘 사랑 영원한 나라, 하늘을 향한 우리의 신앙 이야기입니다. 교회 나오기 훨씬 전에 | 교회에 나오자마자 | 40년간의 만성병 치유 | 천국의 사다리 | 죽음 앞에서 | 사신 | 신앙과 교회 | 고유현덕권사를 보내며 | 그 여름 겨울 / 선한 일을 하고 – 또 다른 주의 길을 들어서| 오직 주의 은혜 # 정월 아침기도 # 신동근성경이어쓰기 3. 하늘 사랑 영원한 나라, 하늘을 향한 우리의 신앙 이야기입니다. 교회 나오기 훨씬 전에 | 교회에 나오자마자 | 40년간의 만성병 치유 | 천국의 사다리 | 죽음 앞에서 | 사신 | 신앙과 교회 | 고유현덕권사를 보내며 | 그 여름 겨울 / 선한 일을 하고 – 또 다른 주의 길을 들어서| 오직 주의 은혜 # 정월 아침기도 # 신동근성경 이어쓰기
1. 가정애 들꽃보경(고2/2000) 울할매꽃은 들꽃이라 하나 길쭉한 잔디언덕의 봄이 오면 둥둥 피어나는 들꽃이라 하고 울할매꽃은 들꽃이라 하나 모롱이돌 등에 우리 마당에 모여 앉은 들꽃이라 하나 작은 울할매의 무릎을 베고 시커먼 밤하늘을 걸을 때 울할매 별똥별을 물고 산 너머로 놀러갔는지 붉은 복숭아빛을 쳐다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듯한 입술이 된다 마로니에 백일장 수상) 1. 가정 애들꽃 보경 (고2/2000) 울할매꽃은 들꽃이라 하나 길쭉한 잔디언덕의 봄이 오면 둥둥 피어나는 들꽃이라 하고 울할매꽃은 들꽃이라 하나 모롱이돌 등에 우리 마당에 모여 앉은 들꽃이라 하나 작은 울할매의 무릎을 베고 시커먼 밤하늘을 걸을 때 울할매 별똥별을 물고 산 너머로 놀러갔는지 붉은 복숭아빛을 쳐다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듯한 입술이 된다 마로니에 백일장 수상)
사랑스러운 들꽃 소녀, 우리 보경이에게도 복숭아빛 돌 같은 아버지가(2000), 하얀 서울 하늘 아래도 봄은 오는가. 매연, 소음이 심한 오월의 길 끝에 들꽃이 지친다. 신입생들의 환한 미소만 기억에 남긴 채 우리 들꽃은 그렇게 봄과 함께 떠난다. 낮은 잔디밭이 잔설을 이불처럼 걸을 때 아기처럼 미소지듯 피어나니 들꽃의 미소 같은 보경! 들꽃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품격 높은 백합도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활짝 핀 목련은 섬뜩하게도 떨어지지만 우리 들꽃은 아침 안개 속에서 편안하게 잠든다. 보이는 비상(飛上)보다 소리 없는 날개를 펼치고자 우리 들꽃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들꽃 소녀, 우리 보경이에게도 복숭아빛 돌 같은 아버지가(2000), 하얀 서울 하늘 아래도 봄은 오는가. 매연, 소음이 심한 오월의 길 끝에 들꽃이 지친다. 신입생들의 환한 미소만 기억에 남긴 채 우리 들꽃은 그렇게 봄과 함께 떠난다. 낮은 잔디밭이 잔설을 이불처럼 걸을 때 아기처럼 미소지듯 피어나니 들꽃의 미소 같은 보경! 들꽃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품격 높은 백합도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활짝 핀 목련은 섬뜩하게도 떨어지지만 우리 들꽃은 아침 안개 속에서 편안하게 잠든다. 보이는 비상(飛上)보다 소리 없는 날개를 펼치고자 우리 들꽃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팔순을 맞은 할머니에게 하루 종일 밤을 새워 우는 것은 여름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셋째 손녀의 깊은 밤에 밝혀진 이유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고갯길 80리 길을 흙먼지 뒤집어쓴 눈물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무사히 계셔서 손녀의 그 기쁨에 잠 못 이루고 환해지는 새벽을 맞이합니다. 할머니, 당신은 몰라요.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시린 발, 굽은 허리의 가는 주름 속, 거기에는 이 땅의 역사가 있고, 거기에는 우리의 뿌리가 있습니다. 할머니! 부디 잊지 마세요. 당신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기를 당신의 향기로운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꿈을 키우는 손녀를 할머니! 오래도록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손녀 보경드림(2000) 팔순을 맞은 할머니에게 하루 종일 밤을 새워 우는 것은 여름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셋째 손녀의 깊은 밤에 밝혀진 이유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고갯길 80리 길을 흙먼지 뒤집어쓴 눈물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무사히 계셔서 손녀의 그 기쁨에 잠 못 이루고 환해지는 새벽을 맞이합니다. 할머니, 당신은 몰라요.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시린 발, 굽은 허리의 가는 주름 속, 거기에는 이 땅의 역사가 있고, 거기에는 우리의 뿌리가 있습니다. 할머니! 부디 잊지 마세요. 당신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기를 당신의 향기로운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꿈을 키우는 손녀를 할머니! 오래도록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손녀 보경드림(2000)
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 전처럼 할머니와 함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항상 할머니 자손들 걱정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다 같이 할머니를 즐겁고 건강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언제까지나. 통영이보다 사랑하는 할머니, 우리 곁에 할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항상 우리 편이니까요. 할머니, 지금까지 떨어져 있는 동안 너무 안 좋아진 것 같은데 빨리 기운을 차리세요. 우리가 모두 기도하고 있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께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사랑한다. 이런거 말이야. 추신) 할머니! 시험기간에 불편하셨지요? 죄송해요. 동향이보다 사랑하는 할머니, 오늘따라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게 참 감사하네요. 여러모로 불편한 마음에 몸도 상하지만 할머니를 영원히 사랑하는 아들, 딸, 며느리, 그리고 정말 많은 손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건강하십시요。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너무 사랑합니다. 보경이보다 할머니, 저는입니다. 저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은이가 징그럽게 컸죠? 이제 늠름한 모습으로 서요. 힘들 때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저희가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저 가끔 엄마 없을 때 집에 오면 아무도 없어서 좀 그랬는데. 그 할머니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할머니 사랑해요.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건강을 지키고 또 앞으로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은올림(2000) 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 전처럼 할머니와 함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항상 할머니 자손들 걱정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다 같이 할머니를 즐겁고 건강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언제까지나. 통영이보다 사랑하는 할머니, 우리 곁에 할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항상 우리 편이니까요. 할머니, 지금까지 떨어져 있는 동안 너무 안 좋아진 것 같은데 빨리 기운을 차리세요. 우리가 모두 기도하고 있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께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사랑한다. 이런거 말이야. 추신) 할머니! 시험기간에 불편하셨지요? 죄송해요. 동향이보다 사랑하는 할머니, 오늘따라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게 참 감사하네요. 여러모로 불편한 마음에 몸도 상하지만 할머니를 영원히 사랑하는 아들, 딸, 며느리, 그리고 정말 많은 손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건강하십시요。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너무 사랑합니다. 보경이보다 할머니, 저는입니다. 저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은이가 징그럽게 컸죠? 이제 늠름한 모습으로 서요. 힘들 때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저희가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저 가끔 엄마 없을 때 집에 오면 아무도 없어서 좀 그랬는데. 그 할머니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할머니 사랑해요.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건강을 지키고 또 앞으로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은올림(2000)
어, 엄마! “엄마, 그거 어디로 가져가요?” “응? 잘했어. 누가 보여주려고. 보여주다니 누구를 보여주나요. 오늘 신문에 아들 기사가 났다고 해서 달려와 신문을 펼쳐보며 아비는 사진이 훨씬 어리고 잘 나왔다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신문을 접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걷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지 오래지만 훨씬 가벼워 보인다. 새마을금고 창립 45주년을 맞아 칼럼을 기고한 것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의 많은 지인들로부터 찬사와 격려의 전화를 받던 중이었다. 그들도 기뻤으니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내용을 보고 그렇게 했지만 엄마는 아직 내용을 잘 모르지만 더 기쁠 것이다. 개어서 방에 놓아두고 누구를 보여주실까? 혹시 오빠나 언니, 또는 친척이 오면 보여줄까? 아무런 약속도 없는 것이다. 누군지도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기쁜 소식이라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은 낮에도 방에 주무시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다리가 약했는데 요즘은 더 무릎을 잘 펴지 못한다. 40이나 50까지 살 수 없다더니 90을 바라보는 연륜이 가져온 상흔인가. 벌써 9개월이 되어 한창 귀여운 호진이가 거실에서 장난을 친다고 나와 함께 얼려주고 즐거워하지만 이 힘센 놈을 견디지 못해 외증조모는 안아볼 수가 없다. 안아보고 싶지만 모두가 말리고, 가끔 앉아서 몰래 그것도 잠시 안아보고는 한다. 호진이는 우리 엄마를 닮아서 외할아버지가 안아주시는 걸 제일 좋아한다. 아마 내가 편하게 안아주는 것 같아. “호진아, 할아버지 힘들어, 내려와서 놀아, 이만”이라며 장난감을 흔들어 보인다. 어머니는 20여 년 전 딸과 딸 다음으로 얻은 귀한 손주은이 애비 무릎에 앉아 있을 때도 그렸다. 애비 무릎 아프니까 내려와서 놀자. 이제 그들의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당신의 무릎이 저려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호진을 무릎에 안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동그란 얼굴에 하얀 피부가 마치 60여 년 전 막내 같다. 두 살 난 나를 안은 채 스물여섯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멀리 보내셨다. 윌로 오빠와 언니가 서너 살 차이로 태어난 어린 삼남매는 외로운 삶의 반려자였다. 특히 막내를 품에 안고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랬다. 그래서 60세가 넘은 지금도 생각나듯 나는 6세까지 젖을 빨았다. 결혼할 것 같은 놈이 어머니의 젖을 빨자 동네 어른들이 놀려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씻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어머니의 젖이 적어 옆집 아주머니의 구걸 젖까지 먹여가며 키웠지만 잘 나오지 않는 그 젖을 쉽게 떼지 못했다. 아마 안 뜯었을 수도 있어.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시오리만한 무극장에 콩을 갈러 갔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하룻밤을 기다려 다음날 오게 됐다. 하룻밤이지만 떨어졌다면 엄마도 젖먹이(?), 나도 그리웠을 것이다. 바깥 마당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잠자리를 잡으면 이리저리 휘두르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달려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한번 힐끗 엄마를 보고는 바로 계속 놀지 않을까. 아니, 엄마 양철이 왜 그래요? 에미가 오면 젖을 먹지 않겠다고 할머니와 약속했어. 이렇게 젖은 허무하게도 그대로 벗겨졌다. 그게 얼마나 아쉬웠는지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군대 가서 배워온 담배를 피울 때 오빠도 엄마도 같이 담배를 피웠다.’ 이걸 주머니에 넣고 피우며 ‘엄마는 좋은 담배를 오빠 몰래 내 손에 쥐어주면서 하는 말이다. 오빠는 엄마에게 모든 것을 잘해줬어. 그런 오빠는 자기가 피우는 담배보다 더 비싼 걸 엄마한테 사줬고, 엄마는 그걸 싼 걸로 바꿔 피워서 좋은 거 하나 둘씩 따로 갖다 놓고 막내한테 은근히 주는 거다. 올해부터 65세가 넘은 어른들에게 정부가 월 8만원 남짓씩을 보조한다. 그것을 모으면서 어머니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경이가 몽골에서 2년이나 고생했는데 돌아오면 줘야 하고, 은이가 집에도 못 오고 사법연수원에서 그 힘든 공부를 한다는 데 오면 줘야 하고, 동향이도 무슨 시험인지 보러 미국에 간다는데 그때 줘야 한다고 해서 몫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 어머니가 책상에 앉아 있는 내 앞에 봉투를 하나 놓는다. ‘이건 기름이나 넣고’ “아니, 기름 넣을 돈이 없을 것 같아요?” 이제 엄마는 방으로 간다. 요즘 내 일이 신통치 않다는 걸 모르실 리가 없어요. 평생 넉넉하지도 못했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어머니는 내 마음을 꿰뚫어본 지 60년이 넘었다. 얼마 전 시골에서 함께 자란 동네 오빠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우리 오빠와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해서 날짜를 잡았다. 어머니도 데리고 갔다. 그 형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물론이고 같은 동네에서 역시 형제처럼 살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한강이 가까운 미사리 한옥 음식점은 옛날을 회상하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역시 쭈글쭈글한 밤송이가 3년 이어진다는 말도 나왔고, 어릴 적 이야기도 구미구미로 나왔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이 부러운 그 오빠 내외, 5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마냥 기뻐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내 고장 입구가 생각나고, 모내기를 마친 논에 저녁 달빛이 어둑어둑할 때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러 멀지 않은 들판으로 나가자고 해도 귀찮다던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더니. 잘 모시지 못했다. 삶은 달걀을 먹지 않는 엄마, 어릴 때부터 줄곧 엄마는 달걀을 아예 못 먹는 줄 알았는데 몇 년 전에야 비로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철없는 막내, 환갑이 지나도록 엄마는 엄마, 나는 막내다. 내가 고향에서 중학교 다닐 때 추석을 앞둔 가을 저녁은 정말 좋았다. 동네 어른들이 시원한 모래사장(장마가 끝나면 사태가 휩쓸고 간 대로변 옆 마당)에 나와 이야기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씨름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던 어른들이 부추긴다. 너랑 누가 더 힘이 세냐고.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빙 둘러앉아 있거나 어, 엄마! “엄마, 그거 어디로 가져가요?” “응? 잘했어. 누가 보여주려고. 보여주다니 누구를 보여주나요. 오늘 신문에 아들 기사가 났다고 해서 달려와 신문을 펼쳐보며 아비는 사진이 훨씬 어리고 잘 나왔다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신문을 접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걷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지 오래지만 훨씬 가벼워 보인다. 새마을금고 창립 45주년을 맞아 칼럼을 기고한 것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의 많은 지인들로부터 찬사와 격려의 전화를 받던 중이었다. 그들도 기뻤으니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내용을 보고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는 아직 내용이 잘 분
보경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할렐루야 네 집 안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네 상에 놓인 아이는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 -시 128:3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셔서 귀한 은혜의 선물로 보경이를 보내주신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이웃에게 당신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보경으로 키워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남은 동안에도 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이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이 되도록 축복의 은혜를 더해주세요. 아멘(アーメン、), 사랑하는 보경(ボギョン), 우리 가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가 있어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고, 네가 있어서 더 즐거운 학급이 되고, 네가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바라. 아버지가 밖에 일이 있어서 일찍은 못 가지만 마음은 당신과 함께 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오늘 저녁 가정예배에는 더 좋은 칭찬과 감사의 기도를 준비하자. 보경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할렐루야 네 집 안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네 상에 놓인 아이는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 -시 128:3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셔서 귀한 은혜의 선물로 보경이를 보내주신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이웃에게 당신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보경으로 키워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남은 동안에도 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이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이 되도록 축복의 은혜를 더해주세요. 아멘(アーメン、), 사랑하는 보경(ボギョン), 우리 가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가 있어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고, 네가 있어서 더 즐거운 학급이 되고, 네가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바라. 아버지가 밖에 일이 있어서 일찍은 못 가지만 마음은 당신과 함께 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오늘 저녁 가정예배에는 더 좋은 칭찬과 감사의 기도를 준비하자.
어느 평생의 어머니, 아버지의 결혼 23주년 기념일에 동운(중3/1998) 당신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더욱 빛나는 사랑이 화려하지 않아도 잊지 못할 은은한 향기로 하나님이 주신 열매와 함께 영원히 빛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 이런 행복을 이루다니 당신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슬프도록 어려웠던 그 길을 지나면서 제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주님 안에서 하나된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곳에 쌓아둔 것은 없지만 당신에게 할 일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은 당신들의 사랑입니다.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 고후 4:18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느 평생의 어머니, 아버지의 결혼 23주년 기념일에 동운(중3/1998) 당신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더욱 빛나는 사랑이 화려하지 않아도 잊지 못할 은은한 향기로 하나님이 주신 열매와 함께 영원히 빛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 이런 행복을 이루다니 당신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슬프도록 어려웠던 그 길을 지나면서 제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주님 안에서 하나된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곳에 쌓아둔 것은 없지만 당신에게 할 일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은 당신들의 사랑입니다.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 고후 4:18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식사는 안 하셨지요? 큰딸을 그토록 귀여워하는 아버지는 둘째 때 내심 아들을 기다렸다. 세명의 친구는 모두 아들을 낳은 나…. 둘째 동향이가 가장 중첩으로 수술까지 했는데, 건강하게 잘 자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둘째 아이를 낳은 이듬해 말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아버지가 새마을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미스터 사이렌’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밤낮없이 일한 대가에는 무엇이든 부족해 보였다. 이 훈장을 받고 와서 두 살도 안 된 동향이 목에 걸고 사진을 찍으며 하는 혼잣말이 “이 훈장을 나중에 누구한테 물려줄 거야?”라고 한다? 순간 숨이 멎는다. 아들이면 아버지 훈장을 당연히 가보(?)로 받을 텐데 딸만 둘이니… 딸이면 어떻겠느냐는 말은 입술에 바른 말이었다. “그래, 내 아들 낳아줄게!” 이렇게 입술을 깨물고 이듬해 낳은 셋째는-아들이 아니었다. 앞의 두 사람과 달리 아버지가 산실에 와서 수고했다며 잘생겼다고 난리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쁜 세 공주들이 우리 집 꽃봉오리다. 왜 이렇게 다 이쁘냐고 난리야. 교회를 가든 동네든 우리 집을 ‘딸들 예쁜 집’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쪽 구석에 외로움이 있다. 일 년 사이에 넷째를 두었다. 아버지는 오히려 눈치를 보며 낙태하라고 했다. 내가 너무 고생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거야. 이 녀석을 가졌을 때 아버지는 사표를 내고 수리가 된다거나 안 된다거나 할 때였다. 그렇지, 또 딸을 낳아서 온 가족을 실망시키고 저도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말없이 아버지를 출근시킨 뒤 병원으로 향했다. ‘사람이 잘 낳는 아들을 왜 낳지 못하는 걸까’라는 비관적인 마음이었지만 결심하고 간단한 절차를 거쳐 수술대에 올랐다. 유난히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손발이 묶였고 지금은 마취를 하는 것 같다. 아침밥은 아직이죠? 수술하러 오는 임산부는 무슨 아침일까. 당연히 ‘네’라는 답일 것이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들으면서 수술 준비를 계속한다. “아니, 먹었는데요?” “네? 그러면 안 돼요. 내일 다시 오세요. 마취주사를 맞으려다 황급히 말리고 묶은 팔다리 끈을 다시 푼다. 모리아산에서 죽음 직전에 이삭을 낳으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를 하셨는가. 병원 밖으로 나왔다. 여기까지 온 김에 얼마 전 누군가에게서 들은 맥을 잘 춘다는 길음동 한의원에도 들러보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발의 노인이 맞이한다. 딸을 낳고 싶어서 맥박을 뛰러 왔어요. 맥이 너무 약하니까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오세요. 그런데 아주머니 얼굴에 뒤늦게 귀한 아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 얘기 들으러 온 거 아니에요? 저도 신자입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벽 위에 성화와 말씀이 걸려 있다. 혹시 태몽을 꾼 적이 있다면 말해 보세요. 넷째를 갖기 전에 밤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삭처럼 순종적이고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아들을 주세요. 하나님을 영화화할 아들을 주세요. 하나님, 청춘에 혼자가 된 저희 어머니가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이 몸이 부서질 정도로 하나님의 일에 충성 봉사하겠습니다.” 잠시 후 꿈을 꾸었다. 맑은 물이 깊게 흐르는 개울에 갈대가 우거져 나는 그 둑에 서 있었다. 강물 속에서 큰 이무기가 물을 거슬러 힘차게 오르는데, 잠시 후 다른 한 마리가 뒤를 쫓는다. 두 사람이 만나면 물안개를 일으키며 휘감는다. 그야말로 솟아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또 꿈을 꿨다. 집 안에 엄마와 함께 있는데 큰 곰이 앞발을 들고 내 양 어깨에 얹고 서서 나를 바라본다. 얼마나 크고,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면 어쩌면 그렇게 선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엄마는 위험하니까 빨리 집 밖으로 내놓고 내보내라고 한다. “엄마, 그러면 오히려 우리를 해칠 수 있으니까 그냥 놔두세요”라며 곰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정하다고 위로했다. 이어 3일째에 또 꿈을 꿨다. 넓은 들에 모종이 한창 짙은 녹색으로 융단을 이루어 싱그럽게 빛난다. 들판 한가운데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 너무나 맑은 물이 은모래와 어우러져 햇빛에 반짝이며 눈부시다. 동영이가 옆에서 긴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바로 옆에 우물이 있다. 왜 위험하게 우물 옆에서 놀아? 해보니 그 안에서 작은 물고기가 많이 헤엄치고 깊은 곳에는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바구니를 우물에 넣고 동영이의 막대기로 서서히 몰아 떠올리면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물고기였다. 엄마 드리려고 집에 안고 왔어. 아주머니, 아들의 꿈이에요. 범상치 않은 아들이니 잘 키우세요. 만약 이 아이를 떼어놓는다면 아주머니에게 큰 재앙이 있을 거예요. 다음날 다시 맥박을 뛰려고 한의원에도, 수술을 하러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그해 섣달 그믐날 흰 눈이 따뜻하게 내린 새벽, 모두가 그리던 아들을 낳았다. 나는 산통도 기쁨의 눈물도 한순간에 잊어버렸다. 아니 혹시 내가 잘못 본건 아닐까? 다시 유아실로 가서 지저귀라고 했다. 아들이었다. 식사는 안 하셨지요? 큰딸을 그토록 귀여워하는 아버지는 둘째 때 내심 아들을 기다렸다. 세명의 친구는 모두 아들을 낳은 나…. 둘째 동향이가 가장 중첩으로 수술까지 했는데, 건강하게 잘 자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둘째 아이를 낳은 이듬해 말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아버지가 새마을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미스터 사이렌’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밤낮없이 일한 대가에는 무엇이든 부족해 보였다. 이 훈장을 받고 와서 두 살도 안 된 동향이 목에 걸고 사진을 찍으며 하는 혼잣말이 “이 훈장을 나중에 누구한테 물려줄 거야?”라고 한다? 순간 숨이 멎는다. 아들이면 아버지 훈장을 당연히 가보(?)로 받을 텐데 딸만 둘이니… 딸이면 어떻겠느냐는 말은 입술에 바른 말이었다. “그래, 내 아들 낳아줄게!” 이렇게 입술을 깨물고 이듬해 낳은 셋째는-아들이 아니었다. 앞의 두 사람과 달리 아버지가 산실에 와서 수고했다며 잘생겼다고 난리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쁜 세 공주들이 우리 집 꽃봉오리다. 왜 이렇게 다 이쁘냐고 난리야. 교회를 가든 동네든 우리 집을 ‘딸들 예쁜 집’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우리에겐 한쪽 구석에 외로움이 있다. 일 년 사이에 넷째를 두었다. 아버지는 오히려 눈치를 보며 낙태하라고 했다. 내가 너무 고생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거야. 이 녀석을 가졌을 때 아버지는 사표를 내고 수리가 된다거나 안 된다거나 할 때였다. 그렇지, 또 딸을 낳아서 온 가족을 실망시키고 저도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말없이 아버지를 출근시킨 뒤 병원으로 향했다. 사람이 잘 낳는 아들을
어떤 은혼식 날 동운(고2/2000) 언제부터 설레며 기다렸을까, 긴 약속을 하고 ’25년이 됐다고 참…’더 중요한 날의 가벼운 잔치, 더 소중한 의미에 아쉬움을 담아 눈물 한 방울을 섞어 마시는 와인 한 잔 부딪히는 잔소리는 메아리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인지, 달려가는 세월에 대한 쓴웃음인지 오늘 밤 꿈 속에서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자.’ 마음껏 즐겨주세요. 모든 것이 변했는데, 이렇게 변했는데도 당신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의 그림자가 됩니다. 어떤 은혼식 날 동운(고2/2000) 언제부터 설레며 기다렸을까, 긴 약속을 하고 ’25년이 됐다고 참…’더 중요한 날의 가벼운 잔치, 더 소중한 의미에 아쉬움을 담아 눈물 한 방울을 섞어 마시는 와인 한 잔 부딪히는 잔소리는 메아리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인지, 달려가는 세월에 대한 쓴웃음인지 오늘 밤 꿈 속에서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자.’ 마음껏 즐겨주세요. 모든 것이 변했는데, 이렇게 변했는데도 당신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의 그림자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보경(대2/2002) 허리가 곧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눈썹이 짙은 한 여자가 있었어요. 옆집 바닥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마주 앉았어요. 남자는 숨김없이 빈 주머니를 내밀었고, 여자는 따뜻한 가슴으로 그 주머니를 채워주었습니다. 머리가 검은 두 사람은 흙 묻은 손으로 가장 깨끗한 삶을 살았고, 꽁꽁 언 두 발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밤늦게 부엌 바닥에 차려진 초라한 식탁은 넉넉한 내일을 기약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잠이 든 어린 아이들의 숨결은 쓰러지지 않는 내일의 굳은 의지였습니다. 어느새 막내의 턱에 수염이 나고, 딸의 손이 걸린 따뜻한 저녁식사에 김이 피어오릅니다. 한 여자의 머리에는 은색 열매가 둥글게 올라가 있고, 한 남자의 눈가에는 젊은 날의 발자국이 추억처럼 남아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두 사람은 아이들의 가슴에 꿈을 얹고 날려버립니다. 멀어져가는자신의초상을바라보면서못다한이야기를해놓습니다. 그리운, 아주 그리운 젊은 날을 함께 걸어온 힘들고 아주 힘든 젊은 날을 함께 견뎌온 지금,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어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어요. 그들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두 사람, 그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어머니, 바로 당신입니다. 결혼 27주년 기념일에 막내딸 드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보경(대2/2002) 허리가 곧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눈썹이 짙은 한 여자가 있었어요. 옆집 바닥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마주 앉았어요. 남자는 숨김없이 빈 주머니를 내밀었고, 여자는 따뜻한 가슴으로 그 주머니를 채워주었습니다. 머리가 검은 두 사람은 흙 묻은 손으로 가장 깨끗한 삶을 살았고, 꽁꽁 언 두 발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밤늦게 부엌 바닥에 차려진 초라한 식탁은 넉넉한 내일을 기약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잠이 든 어린 아이들의 숨결은 쓰러지지 않는 내일의 굳은 의지였습니다. 어느새 막내의 턱에 수염이 나고, 딸의 손이 걸린 따뜻한 저녁식사에 김이 피어오릅니다. 한 여자의 머리에는 은색 열매가 둥글게 올라가 있고, 한 남자의 눈가에는 젊은 날의 발자국이 추억처럼 남아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두 사람은 아이들의 가슴에 꿈을 얹고 날려버립니다. 멀어져가는자신의초상을바라보면서못다한이야기를해놓습니다. 그리운, 아주 그리운 젊은 날을 함께 걸어온 힘들고 아주 힘든 젊은 날을 함께 견뎌온 지금,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어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어요. 그들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두 사람, 그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어머니, 바로 당신입니다. 결혼 27주년 기념일에 막내딸 드림
1995년 어버이날, 어버이날,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 어버이날입니다. 조금 신경썼어요. 히히)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꽃을 달지 못했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편지로 대신하겠습니다. 서운하시다면 용서해 주세요. 또 하나, 지금까지 키워줘서 고맙다고 부모님께 매일 편지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버이날이 지나면 항상 다시 마음 아파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또 있어요. 제가 게으르기 때문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님께 드립니다.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우리 먹이고자 뼛속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광대뼈가 나온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엄마도 우리를 키우느라 건강했던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 역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말로만 끝난다 감사하지 않고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드리는 훌륭한 아들 동운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모님을 무지무지하게♡라고 말하는 AAA씨가 편지를 쓰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마라는 단어는요. 항상 제 곁에 계시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그 귀한 존재를 잊고 살기 좋은 단어인 엄마 어떻게 보면 저는 정말 운이 좋고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없는 아이들은 엄마라는 단어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지만 엄마가 있는 나는 힘들 때, 기쁠 때, 우울할 때, 심심할 때조차도 엄마라고 부르고 의지할 수 있으니까. 또 너무 행복해서 엄마한테 반항도 하고 그래서 엄마를 슬프게 하는 나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너무 떨려요. 맞아요。 항상 저희 사남매 중에 특히 트러블이 많았던 인물이 저였어요. 지금은 어느새 고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3 엄마. 저도 말도 안 하고 내색도 안 하지만 너무 떨려요. 이제 고등학교 입시를 치른 언니도 제 마음만은 다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내일이 3학년의 첫 시험입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너무 떨립니다. 엄마, 이런 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정말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저로서는 정말 동향이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바르게 살겠습니다. 절대로 다른 엄마들 앞에서 엄마의 침울한 모습을 만들지 않아요. 엄마, 저 때문에 힘드시죠?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맨날 장난으로 엄마한테 살쪘다고 놀리는데 다들 아시죠? 질투 때문이라는 걸. (엄마처럼 예쁜 엄마는 처음이에요)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10대라서 여러가지 고민이 많아요.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이 편지만은 정말 진지한 내용만 담고 싶었지만 횡설수설했던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날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아시죠?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사랑해서 글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몸조리 잘 하세요. 나중에 또 편지 쓸게요. 시험 전날 쓰는 일이라 바빠서 제 몸과 글씨 모두 엉터리 용서해 주세요. 예쁜 엄마의 예쁜 딸 동향이보다 사랑한다는 말밖에 엄마, 아빠에 대한 제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 없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까요? 그동안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 -신상 한탄, 친구 이야기 등 -이 정말 많았는데 막상 펜을 들고 보니 떨리는 마음에 아무 생각이 안 나네요. 어제는 정말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죄송했습니다. 나도 하루 종일 마음이 복잡했어요. 요즘 내 생각에도 내 모습이 너무 엉망이에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 나름대로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 그토록 원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 나름대로 회의도 느끼면서 꽤 힘들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수학과’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제가 포기해야 하는 꿈 등이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눈물겹고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신경도 좀 예민해졌어요. 그래서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바로 제 자신이 힘들기 때문에 부모님의 마음은 사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어제 그렇게 부모님을 슬프게 한 거예요. 어제 아버지의 편지 그리고 신문기사를 읽고 정말로 정말로 슬퍼서 울었어요.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하고. 엄마 아빠는 그토록 나를 사랑해주는데 이 철없는 동영이는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예요. 잠시 동안 자기 자신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 정말 정말 사랑해요. -내 마음을 부모님이 얼마나 알겠나. 지금 비실거리는 나의 모습을 조만간 곧 곧 곧은 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이걸로 펜을 놓을 생각입니다. 큰딸이 1995년 어버이날 어버이날 어버이날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 어버이날입니다. 조금 신경썼어요. 히히)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꽃을 달지 못했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편지로 대신하겠습니다. 서운하시다면 용서해 주세요. 또 하나, 지금까지 키워줘서 고맙다고 부모님께 매일 편지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버이날이 지나면 항상 다시 마음 아파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또 있어요. 제가 게으르기 때문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님께 드립니다.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우리 먹이고자 뼛속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광대뼈가 나온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엄마도 우리를 키우느라 건강했던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 역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말로만 끝난다 감사하지 않고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드리는 훌륭한 아들 동운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모님을 무지무지하게♡라고 말하는 AAA씨가 편지를 쓰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마라는 단어는요. 항상 제 곁에 계시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그 귀한 존재를 잊고 살기 좋은 단어인 엄마 어떻게 보면 저는 정말 운이 좋고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없는 아이들은 엄마라는 단어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지만 엄마가 있는 나는 힘들 때, 기쁠 때, 우울할 때, 심심할 때조차도 엄마라고 부르고 의지할 수 있으니까. 또 너무 행복해서 엄마한테 반항도 하고 그래서 엄마를 슬프게 하는 나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너무 떨리고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1998)의 딸들이 커졌다. 사춘기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이 고맙다. 퇴근길에 작은 가게에 들러 사과를 2개 샀다. 하나는 아주 잘생긴 놈이고 다른 하나는 좀 못생긴 놈이야. 잘생긴 거 대충 씻고 크게 한 입 먹고 집에 왔어. 적당히 숨겨놓고 대학교 4학년 동영, 고3 동향, 그리고 고1 보경이 모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모두 이리 오너라. “왜 아빠, 뭐 좋은 거 주려고 그래?” 이 사과 둘 중에 너희는 어느 게 나아? 물론 이빨 자국은 안 보이게 하면서 두 개를 나란히 보여줬다. “이게 좋겠다, 이건 왜 이렇게 못생겼어? 그렇지? 그런데 이거 봐. 아니, 이건 먹은 거 아니야? 아무리 예뻐도 남이 먹던 것은 가치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1998)의 딸들이 커졌다. 사춘기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이 고맙다. 퇴근길에 작은 가게에 들러 사과를 2개 샀다. 하나는 아주 잘생긴 놈이고 다른 하나는 좀 못생긴 놈이야. 잘생긴 거 대충 씻고 크게 한 입 먹고 집에 왔어. 적당히 숨겨놓고 대학교 4학년 동영, 고3 동향, 그리고 고1 보경이 모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모두 이리 오너라. “왜 아빠, 뭐 좋은 거 주려고 그래?” 이 사과 둘 중에 너희는 어느 게 나아? 물론 이빨 자국은 안 보이게 하면서 두 개를 나란히 보여줬다. “이게 좋겠다, 이건 왜 이렇게 못생겼어? 그렇지? 그런데 이거 봐. 아니, 이건 먹은 거 아니야? 아무리 예뻐도 남이 먹던 것은 가치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아… 벌써 늦잠도 잤어. “왜?” “모레가 개학이잖아요.” “어? 벌써 개학이야?”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정동진, 아버지 스스로의 이 물음에 답할 말을 빨리 준비하지 못했다. 길었던 것 같은 방학이 끝났네. -우리 동영이는 과외 2학년으로 학교에, 꿈이 많은 대학의 방학을 잊고 있었구나. -우리 동향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편안하지 않은 겨울방학이었고. -보경이는 아빠랑 바람만 피우고 있어서 이번 겨울을 보내는구나. -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과 속에서 보람을 찾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이다? 지금 강의 시간이 30~40분 남아 있어 가까운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이 편지를 쓴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사르르 녹는 눈 녹은 양지가 오히려 음침한 건 아마 아빠 마음이 그런 것 같아. 오늘 큰 일을 당한 사람이 아버지 사무실에 다녀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큰일 날 때도 있대. 그건 내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어. 그러나 그 어려움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아빠는 얼핏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생각했다. 전쟁터의 폐허에 쓰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스칼렛, 그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 부호의 땅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아니, 앞으로의 우리 삶의 중요한 교훈으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아, 너희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보장은 없는 것이고 스칼렛의 교훈은 너희에게도 늘 소중히 여겨야 할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너희 도시락을 준비하며 눈을 떠야 하는 엄마,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과 속에서 괴로워하는 너희, 하루하루 살벌한 경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너희의 앞날을 위해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아버지, 우리 모두 어쩌면 눈이 녹아버린 양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칼렛처럼 견고하게 살면 눈 녹은 양지 한 켠 어딘가에서 언 땅을 뚫고 싹이 트듯 마침내 성취하라. 새싹을 위해 봄은 올 것이고, 여름의 힘찬 햇살이 줄기를 키울 것이며, 그 튼튼한 줄기로 태풍을 이기면 너희는 알찬 열매를 거둘 것이다. 방학처럼 쉽게 지나가는 세월을 절약하자.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을 닮자. 추신: 보경, 정동진의 그 붉은 햇살은 별의 이야기처럼 우리 가슴에 간직하자. 99. 1.30. 개학을 앞두고 아빠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아… 벌써 늦잠도 잤어. “왜?” “모레가 개학이잖아요.” “어? 벌써 개학이야?”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정동진, 아버지 스스로의 이 물음에 답할 말을 빨리 준비하지 못했다. 길었던 것 같은 방학이 끝났네. -우리 동영이는 과외 2학년으로 학교에, 꿈이 많은 대학의 방학을 잊고 있었구나. -우리 동향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편안하지 않은 겨울방학이었고. -보경이는 아빠랑 바람만 피우고 있어서 이번 겨울을 보내는구나. -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과 속에서 보람을 찾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이다? 지금 강의 시간이 30~40분 남아 있어 가까운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이 편지를 쓴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사르르 녹는 눈 녹은 양지가 오히려 음침한 건 아마 아빠 마음이 그런 것 같아. 오늘 큰 일을 당한 사람이 아버지 사무실에 다녀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큰일 날 때도 있대. 그건 내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어. 그러나 그 어려움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아빠는 얼핏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생각했다. 전쟁터의 폐허에 쓰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스칼렛, 그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 부호의 땅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아니, 앞으로의 우리 삶의 중요한 교훈으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아, 너희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보장은 없는 것이고 스칼렛의 교훈은 너희에게도 늘 소중히 여겨야 할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너희 도시락을 준비하며 눈을 떠야 하는 엄마,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과 속에서 괴로워하는 너희, 하루하루 살벌한 경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너희의 앞날을 위해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아버지, 우리 모두 어쩌면 눈이 녹아버린 양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칼렛처럼 견고하게 살면 눈 녹은 양지 한 켠 어딘가에서 언 땅을 뚫고 싹이 트듯 마침내 성취하라. 새싹을 위해 봄은 올 것이고, 여름의 힘찬 햇살이 줄기를 키울 것이며, 그 튼튼한 줄기로 태풍을 이기면 너희는 알찬 열매를 거둘 것이다. 방학처럼 쉽게 지나가는 세월을 절약하자.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을 닮자. 추신: 보경, 정동진의 그 붉은 햇살은 별의 이야기처럼 우리 가슴에 간직하자. 99. 1.30. 개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엄마한테 늦은 시간이에요. 엄마는 잠도 안 자고 쓸데없이 편지를 썼냐고 얼굴을 붉힐 거예요. 항상 받기만 했던 못생긴 막내딸이 생일을 맞은 저희 엄마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고민했는데 멋진 일 하나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고3 생활이 어쩌면 저보다 엄마에게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밤늦게 들어온 딸을 못 보고 잠들면 새벽에라도 조용히 나와 내 얼굴을 보고 잠드는 엄마. 엄마가 나를 항상 따뜻한 눈으로 지켜준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워요. 우리 엄마가 아픈 다리를 고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그렇게 짓궂은 말을 한 막내딸이에요. 그동안 이 많은 가족을 돌보느라 지친 다리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다리를 한 번도 제대로 주무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가 태어난 이 소중한 날, 엄마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숨 쉴 수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그 어떤 날보다 소중합니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아이를 키우며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 엄마는 새벽에 두 개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늘 반찬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엄마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우리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면 안 되는데 그래도 엄마가 언제 클지 모르는 막내딸 보경이가 이제 고3이에요. 몇 년 후면 길고 긴 도시락의 역사가 막을 내리네요. 엄마, 엄마, 자꾸 불러도 계속 부르고 싶어지는 이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 줄 몰랐어요. 우리 집의 중심, 가족 쉼터 – 엄마, 저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해서 엄마 발도 낫게 해드리고 엄마랑 같이 기분 좋게 장도 보고 200일도 안 남았어요. 엄마,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아침에 불안한 마음으로 문 밖을 나설 때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는 엄마의 그 사랑에 힘입어 막내딸 보경이는 오늘도 열심히 달립니다. 사랑해요, 엄마. 2000년 봄 보경이가 엄마한테 늦은 시간이에요. 엄마는 잠도 안 자고 쓸데없이 편지를 썼냐고 얼굴을 붉힐 거예요. 항상 받기만 했던 못생긴 막내딸이 생일을 맞은 저희 엄마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고민했는데 멋진 일 하나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고3 생활이 어쩌면 저보다 엄마에게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밤늦게 들어온 딸을 못 보고 잠들면 새벽에라도 조용히 나와 내 얼굴을 보고 잠드는 엄마. 엄마가 나를 항상 따뜻한 눈으로 지켜준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워요. 우리 엄마가 아픈 다리를 고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그렇게 짓궂은 말을 한 막내딸이에요. 그동안 이 많은 가족을 돌보느라 지친 다리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다리를 한 번도 제대로 주무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가 태어난 이 소중한 날, 엄마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숨 쉴 수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그 어떤 날보다 소중합니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아이를 키우며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 엄마는 새벽에 두 개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늘 반찬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엄마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우리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면 안 되는데 그래도 엄마가 언제 클지 모르는 막내딸 보경이가 이제 고3이에요. 몇 년 후면 길고 긴 도시락의 역사가 막을 내리네요. 엄마, 엄마, 자꾸 불러도 계속 부르고 싶어지는 이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 줄 몰랐어요. 우리 집의 중심, 가족 쉼터 – 엄마, 저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해서 엄마 발도 낫게 해드리고 엄마랑 같이 기분 좋게 장도 보고 200일도 안 남았어요. 엄마,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아침에 불안한 마음으로 문 밖을 나설 때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는 엄마의 그 사랑에 힘입어 막내딸 보경이는 오늘도 열심히 달립니다. 사랑해요, 엄마. 2000년 봄 보경이가
50번째 생일 보경(대1/2001)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나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훈훈한 검은 머리를 땋아 나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의 추억이 녹아내리며 어머니의 주름살이 됐다. 사진 속 소녀는 어느새 50번째 생일을 맞은 행복한 엄마가 됐다. 결혼 26년, 자신의 이름을 뒤로한 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돌본다. 오랜 세월 지금의 우리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발. 가는 다리의 신음 속에서 과거 가슴에 묻어뒀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 우리 기억 속에서 이미 잊혀져버린 이야기. 품에 담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날갯짓을 한다. 곧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이다. 50세에 어머니는 딸의 모습 속에 담긴 자신을 본다. 장미꽃 50송이가 배달되어 왔다. 붉은 장미 50송이가 높이 쌓여 있고 15송이의 백합이 군데군데 꽂혀 있는 꽃바구니. 아내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아버지가 보낸 꽃인가. 엄마는 잠시 아빠와 연인이 된다. 아주 오래된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쉰 고개가 넘은 어머니의 아침은 여전히 혹독하다. 생일을 맞은 오늘 아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우리 이불을 점검하고 식탁에 놓인 기상 시간을 체크한다. 그리고 전쟁 같은 아침 풍경을 그려나간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의료기에 누워 허리를 펼 것이다. 그때 엄마는 생각할 것이다. 50년의 삶을,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온 이 황금 같은 보금자리 – 우리 가족을. 어머니의 50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0세의 흰머리조차 아름다운 우리 엄마, 당신을 사랑합니다. 50번째 생일 보경(대1/2001)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나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훈훈한 검은 머리를 땋아 나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의 추억이 녹아내리며 어머니의 주름살이 됐다. 사진 속 소녀는 어느새 50번째 생일을 맞은 행복한 엄마가 됐다. 결혼 26년, 자신의 이름을 뒤로한 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돌본다. 오랜 세월 지금의 우리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발. 가는 다리의 신음 속에서 과거 가슴에 묻어뒀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 우리 기억 속에서 이미 잊혀져버린 이야기. 품에 담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날갯짓을 한다. 곧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이다. 50세에 어머니는 딸의 모습 속에 담긴 자신을 본다. 장미꽃 50송이가 배달되어 왔다. 붉은 장미 50송이가 높이 쌓여 있고 15송이의 백합이 군데군데 꽂혀 있는 꽃바구니. 아내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아버지가 보낸 꽃인가. 엄마는 잠시 아빠와 연인이 된다. 아주 오래된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쉰 고개가 넘은 어머니의 아침은 여전히 혹독하다. 생일을 맞은 오늘 아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우리 이불을 점검하고 식탁에 놓인 기상 시간을 체크한다. 그리고 전쟁 같은 아침 풍경을 그려나간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의료기에 누워 허리를 펼 것이다. 그때 엄마는 생각할 것이다. 50년의 삶을,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온 이 황금 같은 보금자리 – 우리 가족을. 어머니의 50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0세의 흰머리조차 아름다운 우리 엄마,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리 와. 밥이나 같이 먹어요 여기 쌍문동으로 이사온지 2년이 넘었다. 집을 골라 터를 잡은 게 아니라 받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집이었는데, 전셋집이 아니라 첫 번째 내 집이었고, 거기다 바닥까지 있는 집이었다. 마루(マル、), 그것은 우리에게 고대의 큰 방보다 더 바라던 것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은 방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어두는 봉당을 거쳐 마당이었다. 돌도 안 된 은이가 엄마를 찾기 위해 문을 밀치고 콘크리트 마당에 굴러 떨어졌을 때 안고 얼마나 울었을까. 이곳은 비록 넓지 않은 마루였지만 은이가 뛰어 노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25평짜리 연립이었지만 더 부러울 게 없었다. 오늘은 어버이날 남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가 고집을 부려 퇴직해도 적지 않았지만 아직 생업이 안정되지 않아 어머니께 어렵게 작은 봉투 하나를 만들어드려 죄송한 마음을 담았다. 하는 일도 없이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고 점심 무렵이 되었다. 아빠는 나가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보경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한 입 먹고 놀러가고 소식은은 바닥에서 혼자 먹거나 안 먹거나 같다. 보경이 나간 출입문이 스르르, 왠지 이상해 돌아서면 “움직이지 마! 돈 내놔!” 이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은 채 바닥에 올라 허리에서 칼을 빼들고 호통을 친다. 오, 신이시여,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세요! 오, 주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외치며 기도를 드렸다. 「떠들지 마라! 떠들면 죽인다. 돈을 내!” “엄마, 아까 드린 것 좀 갖다 주세요. 강도가 든 뒤로 계속 사시처럼 굴기만 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흠집이 나서 걷지도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셔서, 잠시 후, 예의 봉투를 가져오신다. 그것을 받고 강도에게 내밀어, 「이것은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드렸는데, 우리 아버지가 놀고 계신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칼을 든 채 낚아채듯 봉투를 받아 열어보니 ‘이것밖에 없어! 더 내놔라고 칼을 세우며 외친다. 미안해요, 이리 와서 밥이나 같이 먹어요. 시끄러워! 떠들면 죽는다! 왜 이러세요?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 우체부가 올 시간이에요. 빨리 움직여요. 내 신고 안 할게. 쩔쩔매며 출입문을 힐끗 보고 강도는 다시 칼을 숨기고 나갔고 나는 그냥 쓰러졌다. 강도는 바닥에 올라간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기도 소리에 흠칫 놀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발이 붙어버린 것이다. “응, 괜찮아?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은이를 안고 물었다.” 뭐가 무서워? 내가 신에게 일러바쳐서 그 형, 뿅 하고 날려버릴 거야. 엄마는 그 난리(?)에도 불구하고 봉투에 든 5만원 중 2만원을 줄여 3만원만 넣어줬다고 했다. 하나님, 위험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엄마도 언니도 무사하고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말소리만 크게 해도 눈물에서 흘러내리는 이 겁쟁이를 강도 앞에서도 대담하게 만들어 온 가족이 무사해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내가 가끔 악몽에 시달리는 게 아마 이 일 때문인 것 같다. 이리 와. 밥이나 같이 먹어요 여기 쌍문동으로 이사온지 2년이 넘었다. 집을 골라 터를 잡은 게 아니라 받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집이었는데, 전셋집이 아니라 첫 번째 내 집이었고, 거기다 바닥까지 있는 집이었다. 마루(マル、), 그것은 우리에게 고대의 큰 방보다 더 바라던 것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은 방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어두는 봉당을 거쳐 마당이었다. 돌도 안 된 은이가 엄마를 찾기 위해 문을 밀치고 콘크리트 마당에 굴러 떨어졌을 때 안고 얼마나 울었을까. 이곳은 비록 넓지 않은 마루였지만 은이가 뛰어 노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25평짜리 연립이었지만 더 부러울 게 없었다. 오늘은 어버이날 남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가 고집을 부려 퇴직해도 적지 않았지만 아직 생업이 안정되지 않아 어머니께 어렵게 작은 봉투 하나를 만들어드려 죄송한 마음을 담았다. 하는 일도 없이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고 점심 무렵이 되었다. 아빠는 나가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보경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한 입 먹고 놀러가고 소식은은 바닥에서 혼자 먹거나 안 먹거나 같다. 보경이 나간 출입문이 스르르, 왠지 이상해 돌아서면 “움직이지 마! 돈 내놔!” 이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은 채 바닥에 올라 허리에서 칼을 빼들고 호통을 친다. 오, 신이시여,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세요! 오, 주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외치며 기도를 드렸다. 「떠들지 마라! 떠들면 죽인다. 돈을 내!” “엄마, 아까 드린 것 좀 갖다 주세요. 강도가 든 뒤로 계속 사시처럼 굴기만 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흠집이 나서 걷지도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셔서, 잠시 후, 예의 봉투를 가져오신다. 그것을 받고 강도에게 내밀어, 「이것은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드렸는데, 우리 아버지가 놀고 계신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칼을 든 채 낚아채듯 봉투를 받아 열어보니 ‘이것밖에 없어! 더 내놔라고 칼을 세우며 외친다. 미안해요, 이리 와서 밥이나 같이 먹어요. 시끄러워! 떠들면 죽는다! 왜 이러세요?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 우체부가 올 시간이에요. 빨리 움직여요. 내 신고 안 할게. 쩔쩔매며 출입문을 힐끗 보고 강도는 다시 칼을 숨기고 나갔고 나는 그냥 쓰러졌다. 강도는 바닥에 올라간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기도 소리에 흠칫 놀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발이 붙어버린 것이다. “응, 괜찮아?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은이를 안고 물었다.” 뭐가 무서워? 내가 신에게 일러바쳐서 그 형, 뿅 하고 날려버릴 거야. 엄마는 그 난리(?)에도 불구하고 봉투에 든 5만원 중 2만원을 줄여 3만원만 넣어줬다고 했다. 하나님, 위험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엄마도 언니도 무사하고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말소리만 크게 해도 눈물에서 흘러내리는 이 겁쟁이를 강도 앞에서도 대담하게 만들어 온 가족이 무사해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내가 가끔 악몽에 시달리는 게 아마 이 일 때문인 것 같다.
꿈속 나들이 아빠(2000)도 지친 한여름 밤 수험 준비를 밝히는 스텐드도 졸린다. 또 한 사람이 독서실로 마중 나가야 한다고 어머니는 시계를 맞춰 먼저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밤은 어두워서 싫어. 아직 닫히지 않은 문으로 검은 그림자가 밀려온다! 당신은 소리친다. 여보, 무슨 일이야? 무서운 꿈 꿨어? 당신의 당신이 없었다면-아, 그 강도가 해쳤을 텐데 내가 먼저 가면 당신이 불쌍하고, 당신이 먼저 가면 무서운 꿈 나는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당신 하나님께 외출을 얻어 매일 밤 당신의 꿈속을 다녀가려고 한다. 아마 하느님도 허락하실 겁니다. 아빠, 눈 떠. 새벽 2시 문으로 보경이와 엄마가 그림자처럼 웃으며 들어간다. 한여름 밤의 이야기, 우리의 소망 같은 꿈. 꿈속 나들이 아빠(2000)도 지친 한여름 밤 수험 준비를 밝히는 스텐드도 졸린다. 또 한 사람이 독서실로 마중 나가야 한다고 어머니는 시계를 맞춰 먼저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밤은 어두워서 싫어. 아직 닫히지 않은 문으로 검은 그림자가 밀려온다! 당신은 소리친다. 여보, 무슨 일이야? 무서운 꿈 꿨어? 당신의 당신이 없었다면-아, 그 강도가 해쳤을 텐데 내가 먼저 가면 당신이 불쌍하고, 당신이 먼저 가면 무서운 꿈 나는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당신 하나님께 외출을 얻어 매일 밤 당신의 꿈속을 다녀가려고 한다. 아마 하느님도 허락하실 겁니다. 아빠, 눈 떠. 새벽 2시 문으로 보경이와 엄마가 그림자처럼 웃으며 들어간다. 한여름 밤의 이야기, 우리의 소망 같은 꿈.
복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요 사랑 안에 사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안에 있으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하려는 것이니 주의는 어떠하듯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 사랑 속에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아내므로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속에서 완전히 성취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한 것이다. -요일 4:16-19” 먼저 이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열심히 살아주신 두 분께 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지만 두 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두 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믿습니다. 늘 연인 같은 남편, 늘 연인 같은 아내로 두 분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앞으로의 일생은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우리 따끈따끈한 사랑이 담긴 선물로 두 분의 사랑이 더욱 향기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리며, 여기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p.s)하나님안에서 두분을 사랑합니다. 1997년 결혼기념일에 두 사람의 모습이 밝게 빛나길 기원하며 사남매보다 복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고 사랑 안에 사는 자는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도 그 안에 있으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하려는 것이니 주의는 어떠하듯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 사랑 속에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아내므로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속에서 완전히 성취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한 것이다. -요일 4:16-19” 먼저 이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열심히 살아주신 두 분께 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지만 두 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두 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믿습니다. 늘 연인 같은 남편, 늘 연인 같은 아내로 두 분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앞으로의 일생은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우리 따끈따끈한 사랑이 담긴 선물로 두 분의 사랑이 더욱 향기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리며, 여기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p.s)하나님안에서 두분을 사랑합니다. 1997년 결혼기념일에 두사람의 모습이 환하게 빛나길 기원하며 사남매로부터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보경(대2/2002) 울창한 새싹보다 한층 더 아름답게 돋아난 신록보다는 태양의 고운 빛깔이 가득 담긴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반백년의 고갯길을 갓 넘은 당신은 지는 태양의 고운 빛깔로 물들어 있습니다. 소곤소곤 눈가 주름 속에는 싱그러운 봄날의 풀향기와 뜨거운 여름 매미소리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당신은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당신의 시어머니는 기도하는 법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큰 아이는 선물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고, 당시의 둘째는 저축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며, 당신의 셋째 또는 셋째는 편지를 쓰는 법을 몰랐을 것이며, 당신이 가장 아래에 있는 아이는 여성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새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당신의 위동 친구들은 위로하는 법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으로 인해 이 세상이 화목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의 부모님에게 얼마나 기쁨이었을까요?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의 가족에게 얼마나 축복이었을까요? 소중한 당신의 생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소중한 당신과 함께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신의 세번째 아이 드림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보경(대2/2002) 울창한 새싹보다 한층 더 아름답게 돋아난 신록보다는 태양의 고운 빛깔이 가득 담긴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반백년의 고갯길을 갓 넘은 당신은 지는 태양의 고운 빛깔로 물들어 있습니다. 소곤소곤 눈가 주름 속에는 싱그러운 봄날의 풀향기와 뜨거운 여름 매미소리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당신은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당신의 시어머니는 기도하는 법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큰 아이는 선물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고, 당시의 둘째는 저축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며, 당신의 셋째 또는 셋째는 편지를 쓰는 법을 몰랐을 것이며, 당신이 가장 아래에 있는 아이는 여성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새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당신의 위동 친구들은 위로하는 법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으로 인해 이 세상이 화목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의 부모님에게 얼마나 기쁨이었을까요?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의 가족에게 얼마나 축복이었을까요? 소중한 당신의 생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소중한 당신과 함께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신의 세번째 아이 드림
카레비빔밥은 말수는 적지만 밝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아내는 새로 시작한 서울 생활에도 기쁨으로 잘 적응한다. 이런 아내를 보고 나는 집에 있지만 외출하는 것도 늘 든든했다.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따뜻한 아침 식사 준비를 거르지 않고, 추운 겨울날에는 연탄 아궁이 옆에 미리 두고 따뜻해진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기운이 출근길 내내 온몸을 감싸곤 했다. 내가 출근하고 나서는 서툴지 않은 솜씨로 집안일을 잘 해냈고, 늦은 퇴근으로 자정이 돼서야 피곤에 지친 채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2칸짜리 셋방에서 시모와 6살 조카와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겨울날, 이날따라 퇴근이 늦지 않아 어느 때보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식탁이다. 흰 쌀밥 위에 노란 가루가 뿌려져 있다. 오늘 카레밥 한번 해봤는데 드셔보세요. 카레가루를 뿌린 밥이다. 저는 별로 안 좋은데 괜찮으시다면 이걸 더 드세요. 아내는 아무래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내게 권한다. “이건 어떻게 하지?” “아마 시골에서 가끔 먹었던 콩가루 비빔밥처럼 마른 카레가루를 밥에 비벼 먹는 거라는 걸 알았나 보다. 난생처음 카레비빔밥 먹어볼래.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쨌든 다 먹어야 했다. 애타게 준비한 아내의 손이 카레 향 속에 상큼하게 녹아 있다. 뭐라고 설명해줘야 상처받지 않을까? 그 후 우리 집에서는 꽤 오랫동안 카레 요리를 맛볼 수 없었다. 처가는 대가족이었다. 3남 6녀로 힘들 때 모이면 그야말로 사는 집 같았다. 5대를 이어오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 속에서 온 가족이 화목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 칭찬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중 둘째 처남은 특히 깊은 신앙으로 신학을 하려 했으나 가정 형편상 농사를 돌보고 있어 주변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정과 교회에는 기둥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는 흠잡을 데 없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심한 병에 걸렸다. 여러 병원을 거쳐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다. 서울의 형제자매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함께 병문안을 하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메뉴에 ‘카레라이스’가 있었어.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것을 함께 주문했다. 아니, 전 카레 안 좋아하는데요. 아내는 완곡하게(?) 카레를 싫어한다. 한번 먹어봐, 괜찮아. 아내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물론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우리 집에는 카레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또는 감동의 스토리로 가족이나 친척, 특히 처가 쪽에 회자되었다. 서울로 시집온 시골 며느리를 위해 카레가루 비빔밥을 말없이 먹은 신랑-부끄러울까 봐 그걸 꼬집고 몇 년을 기다려 자연스럽게 깨우쳐 준 사려 깊은(?) 신랑으로 나는 분에 넘치는 큰 점수를 얻고 말았다. 이후 카레는 말할 것도 없고 피자를 만들어도 아이들은 정림표가 사는 것보다 맛있다고 아우성이다. 카레비빔밥은 말수는 적지만 밝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아내는 새로 시작한 서울 생활에도 기쁨으로 잘 적응한다. 이런 아내를 보고 나는 집에 있지만 외출하는 것도 늘 든든했다.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따뜻한 아침 식사 준비를 거르지 않고, 추운 겨울날에는 연탄 아궁이 옆에 미리 두고 따뜻해진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기운이 출근길 내내 온몸을 감싸곤 했다. 내가 출근하고 나서는 서툴지 않은 솜씨로 집안일을 잘 해냈고, 늦은 퇴근으로 자정이 돼서야 피곤에 지친 채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2칸짜리 셋방에서 시모와 6살 조카와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겨울날, 이날따라 퇴근이 늦지 않아 어느 때보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식탁이다. 흰 쌀밥 위에 노란 가루가 뿌려져 있다. 오늘 카레밥 한번 해봤는데 드셔보세요. 카레가루를 뿌린 밥이다. 저는 별로 안 좋은데 괜찮으시다면 이걸 더 드세요. 아내는 아무래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내게 권한다. “이건 어떻게 하지?” “아마 시골에서 가끔 먹었던 콩가루 비빔밥처럼 마른 카레가루를 밥에 비벼 먹는 거라는 걸 알았나 보다. 난생처음 카레비빔밥 먹어볼래.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쨌든 다 먹어야 했다. 애타게 준비한 아내의 손이 카레 향 속에 상큼하게 녹아 있다. 뭐라고 설명해줘야 상처받지 않을까? 그 후 우리 집에서는 꽤 오랫동안 카레 요리를 맛볼 수 없었다. 처가는 대가족이었다. 3남 6녀로 힘들 때 모이면 그야말로 사는 집 같았다. 5대를 이어오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 속에서 온 가족이 화목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 칭찬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중 둘째 처남은 특히 깊은 신앙으로 신학을 하려 했으나 가정 형편상 농사를 돌보고 있어 주변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정과 교회에는 기둥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는 흠잡을 데 없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심한 병에 걸렸다. 여러 병원을 거쳐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다. 서울의 형제자매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함께 병문안을 하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메뉴에 ‘카레라이스’가 있었어.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것을 함께 주문했다. 아니, 전 카레 안 좋아하는데요. 아내는 완곡하게(?) 카레를 싫어한다. 한번 먹어봐, 괜찮아. 아내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물론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우리 집에는 카레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또는 감동의 스토리로 가족이나 친척, 특히 처가 쪽에 회자되었다. 서울로 시집온 시골 며느리를 위해 카레가루 비빔밥을 말없이 먹은 신랑-부끄러울까 봐 그걸 꼬집고 몇 년을 기다려 자연스럽게 깨우쳐 준 사려 깊은(?) 신랑으로 나는 분에 넘치는 큰 점수를 얻고 말았다. 이후 카레는 말할 것도 없고 피자를 만들어도 아이들은 정림표가 사는 것보다 맛있다고 아우성이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아 신양철(2001) 범생으로 유명한 막내가 머리를 염색한다고 한다. 벌써 몇 년 전부터인지 청소년들은 갈색 머리는 물론 노란 머리, 흰머리가 잘 보였지만 어느새 노인이 아닌 젊은 여성들이 형형색색의 염색으로 개성(?)을 살린다고 한다. 막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힘든 고비를 넘기자마자 해방감에 셋째 언니와 짜고 아버지의 동의를 구한다. 염색? 그래 한번 해보렴. 덕분에 셋째 언니는 몇 개의 특이한 브릿지(?)를 넣었대. 그러고보니 귀엽고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 집 사람들은 한두 번 호기심으로 해도 결코 오래는 못 할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교육시켰던 것이 생각난다. “얘들아, 옷차림은 ‘남들이 다시는 안 보게’ 입는 게 좋아.” “…왜요?” “너무 못생겨도 남들이 다시 본다. ‘왜 저렇게 입고 다니냐’고. 반면 너무 화려하게 입어도 다시 보는 법이다. ‘와, 잘 입었다’라든가, ‘엄청 화려했다’라든가. 이 두 가지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자면 평범한 속에 품위가 있으면 그것이 들어가지 않는 내밀한 진짜 멋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일상적으로 우리 집을 감싸고 있는, 우리 집에 담겨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 가훈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하고 행동을 하자’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아 신양철(2001) 범생으로 유명한 막내가 머리를 염색한다고 한다. 벌써 몇 년 전부터인지 청소년들은 갈색 머리는 물론 노란 머리, 흰머리가 잘 보였지만 어느새 노인이 아닌 젊은 여성들이 형형색색의 염색으로 개성(?)을 살린다고 한다. 막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힘든 고비를 넘기자마자 해방감에 셋째 언니와 짜고 아버지의 동의를 구한다. 염색? 그래 한번 해보렴. 덕분에 셋째 언니는 몇 개의 특이한 브릿지(?)를 넣었대. 그러고보니 귀엽고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 집 사람들은 한두 번 호기심으로 해도 결코 오래는 못 할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교육시켰던 것이 생각난다. “얘들아, 옷차림은 ‘남들이 다시는 안 보게’ 입는 게 좋아.” “…왜요?” “너무 못생겨도 남들이 다시 본다. ‘왜 저렇게 입고 다니냐’고. 반면 너무 화려하게 입어도 다시 보는 법이다. ‘와, 잘 입었다’라든가, ‘엄청 화려했다’라든가. 이 두 가지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자면 평범한 속에 품위가 있으면 그것이 들어가지 않는 내밀한 진짜 멋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일상적으로 우리 집을 감싸고 있는, 우리 집에 담겨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 가훈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하고 행동을 하자’다.
가훈의 반대편 벽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구가 붙어 있다. 서예를 하는 전주 모세마을금고 여모 전무에게 특별히 요청한 예서체 횡서 액자다. 儉이불루 화이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 온조왕 15년 봄 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23권)에서 이 궁실이 “검소하지도 누추하지도 화려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백제 문화의 진수이고, 어쩌면 오늘날 충청도의 이미지이며, 나아가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토 아래서 자란 자기 자신을 형성한 정신적, 문화적인 내면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남자들도 귀걸이에 심지어 코걸이까지 하고 튀어야 할(?) 세대에, 우리 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딸 셋에 엄마까지 아무도 귀걸이 때문에 귀를 열지 않았다. 어딜 가나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부모님께 항의(?)하는 아이들도 내심 싫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은은한 향기라면 아껴두어도 가끔 새어나올 것이다. 가훈의 반대편 벽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구가 붙어 있다. 서예를 하는 전주 모세마을금고 여모 전무에게 특별히 요청한 예서체 횡서 액자다. 儉이불루 화이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 온조왕 15년 봄 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23권)에서 이 궁실이 “검소하지도 누추하지도 화려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백제 문화의 진수이고, 어쩌면 오늘날 충청도의 이미지이며, 나아가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토 아래서 자란 자기 자신을 형성한 정신적, 문화적인 내면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남자들도 귀걸이에 심지어 코걸이까지 하고 튀어야 할(?) 세대에, 우리 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딸 셋에 엄마까지 아무도 귀걸이 때문에 귀를 열지 않았다. 어딜 가나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부모님께 항의(?)하는 아이들도 내심 싫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은은한 향기라면 아껴두어도 가끔 새어나올 것이다.
늘 손이 바쁜 언니에게 어쩌다 심부름을 시키는 날이면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 공부하러 나갔단다. 그리고 뒷산 언덕에 올라 책꾸러미를 던지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볼이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향긋한 풀피리도 불기도 했다고 한다. 풀피리 노래가 파도를 타고 아랫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자 어느새 누렁이도 동산에 오르듯 노래를 함께 했다고 한다. 2. 꼬인 교모 틈으로 무 속처럼 새하얀 꿈이 새어 나오면 친구야, 오늘은 책을 던져 매운 소주 한 잔을 뿌리러 가자. 한 잔은 시인의 꿈을 따르고, 한 잔은 소설가의 꿈을 따르자. 언젠가 화석 같은 꿈이 되어 평생 가슴에 박혀 있을 꿈. 예순 살, 떠나지 않는 눈으로 새벽 밥상을 받는다. 오늘 식탁 곳곳에는 아내의 세심한 손길이 묻어 있다. 2, 3개의 나물 반찬과 호박전, 두부전, 북어조림, 그리고 따뜻한 미역국, 아이들 눈 뜨듯 발 디딜 틈 없이 현관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일찍 눈을 뜬 엄마. 언제부턴가 차곡차곡 모아둔 봉투를 수줍게 내민다. “생일 축하해요.” 누구보다 아들의 60번째 생일에 감사했던 어머니, 이 순간을 기다리며 얼마나 가슴이 설렜을까. 기분 좋게 선물을 받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한없이 반갑기만 하다. 남편의 생일을 준비하는 며느리와 이를 돕고 싶은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옥신각신하다 보면 창밖에는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60이라… 아빠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해 늘 아쉬워한다. 30년, 한시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달려온 아버지에게 새로운 30년을 선물하고 싶다. 마음 놓고 책도 쓰고, 밥도 천천히 드시고, 걸음걸이도 조금은 여유로운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다. 30년 몸에 밴 직장을 떠나 오랜만에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그때에 세월의 강물에 다 흘러버린 텅 빈 세상을 만나기보다는 화석처럼 굳어져 변하지 않는 젊은 날의 꿈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고향집 같은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인생의 새 계절을 맞이한 아버지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03년 10월 일 막내딸 드림 늘 손이 바쁜 언니에게 어쩌다 심부름을 시키는 날이면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 공부하러 나갔단다. 그리고 뒷산 언덕에 올라 책꾸러미를 던지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볼이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향긋한 풀피리도 불기도 했다고 한다. 풀피리 노래가 파도를 타고 아랫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자 어느새 누렁이도 동산에 오르듯 노래를 함께 했다고 한다. 2. 꼬인 교모 틈으로 무 속처럼 새하얀 꿈이 새어 나오면 친구야, 오늘은 책을 던져 매운 소주 한 잔을 뿌리러 가자. 한 잔은 시인의 꿈을 따르고, 한 잔은 소설가의 꿈을 따르자. 언젠가 화석 같은 꿈이 되어 평생 가슴에 박혀 있을 꿈. 예순 살, 떠나지 않는 눈으로 새벽 밥상을 받는다. 오늘 식탁 곳곳에는 아내의 세심한 손길이 묻어 있다. 2, 3개의 나물 반찬과 호박전, 두부전, 북어조림, 그리고 따뜻한 미역국, 아이들 눈 뜨듯 발 디딜 틈 없이 현관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일찍 눈을 뜬 엄마. 언제부턴가 차곡차곡 모아둔 봉투를 수줍게 내민다. “생일 축하해요.” 누구보다 아들의 60번째 생일에 감사했던 어머니, 이 순간을 기다리며 얼마나 가슴이 설렜을까. 기분 좋게 선물을 받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한없이 반갑기만 하다. 남편의 생일을 준비하는 며느리와 이를 돕고 싶은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옥신각신하다 보면 창밖에는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60이라… 아빠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해 늘 아쉬워한다. 30년, 한시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달려온 아버지에게 새로운 30년을 선물하고 싶다. 마음 놓고 책도 쓰고, 밥도 천천히 드시고, 걸음걸이도 조금은 여유로운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다. 30년 몸에 밴 직장을 떠나 오랜만에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그때에 세월의 강물에 다 흘러버린 텅 빈 세상을 만나기보다는 화석처럼 굳어져 변하지 않는 젊은 날의 꿈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고향집 같은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인생의 새 계절을 맞이한 아버지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03년 10월 일 막내딸 드림
초겨울의 보경(2002) 하나하나 어둠을 담고 산 너머 여행을 떠나는 보름달 속에서 익살스러운 어둠 조각이 흘러나오면 새벽이 시작된다. 얼어붙은 땅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구두 뒤꿈치 소리에는 떨지 않는 졸음이 묻어 있다. 오늘따라 하얀 입김을 타고 아버지의 고민이 날아가길 바라지만 옷깃을 찢는 추위에 묻혀 뼈 속 깊이 스며든다. “아, 날씨가 너무 춥네.” 추위 전에 한국어는 이것뿐. 어차피 곧 봄이 올 텐데 한 번 춥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 무엇을 하겠는가. 긴 밤의 끝에는 새벽이 매달려 있고, 그 손을 놓자마자 아침이 온다. 어김없이 아버지께 아침을 선물했던 그분이 오늘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 새해라 요즘 부쩍 피곤한 아버지에게 깜짝 쇼를 해주기 위해서다. 아빠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꼭 기도를 하면서 그분을 만날 거야. 항상 아버지에게 소중한 하루를 선물하는 그분이 오늘도 아버지 방을 찾으니 아버지는 그저 눈을 감고 손을 벌리고 그 선물을 기꺼이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는 조금 힘을 내줄 거야. 「 무화과 잎이 말라서 포도알이 없어도, 감람알이 끝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게 양떼가 없어도, 외양간 송아지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를 즐길 것이다, 나는 여호와를 즐길 것이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에 의해 기뻐할 것이다. 내가 오늘 그분께 특별히 부탁한 것은 아버지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빠! 정말 춥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님이 약속하신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큰 코가 있잖아요~. 이 정도의 추위 정도 조금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러납니다만, 뭐 대수롭지 않겠지요. 힘내세요, 아버지-! 하나님이, 할머니가, 어머니가 또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기쁨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아빠~ 사랑해요!! 초겨울의 보경(2002) 하나하나 어둠을 담고 산 너머 여행을 떠나는 보름달 속에서 익살스러운 어둠 조각이 흘러나오면 새벽이 시작된다. 얼어붙은 땅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구두 뒤꿈치 소리에는 떨지 않는 졸음이 묻어 있다. 오늘따라 하얀 입김을 타고 아버지의 고민이 날아가길 바라지만 옷깃을 찢는 추위에 묻혀 뼈 속 깊이 스며든다. “아, 날씨가 너무 춥네.” 추위 전에 한국어는 이것뿐. 어차피 곧 봄이 올 텐데 한 번 춥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 무엇을 하겠는가. 긴 밤의 끝에는 새벽이 매달려 있고, 그 손을 놓자마자 아침이 온다. 어김없이 아버지께 아침을 선물했던 그분이 오늘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 새해라 요즘 부쩍 피곤한 아버지에게 깜짝 쇼를 해주기 위해서다. 아빠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꼭 기도를 하면서 그분을 만날 거야. 항상 아버지에게 소중한 하루를 선물하는 그분이 오늘도 아버지 방을 찾으니 아버지는 그저 눈을 감고 손을 벌리고 그 선물을 기꺼이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는 조금 힘을 내줄 거야. 「 무화과 잎이 말라서 포도알이 없어도, 감람알이 끝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게 양떼가 없어도, 외양간 송아지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를 즐길 것이다, 나는 여호와를 즐길 것이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에 의해 기뻐할 것이다. 내가 오늘 그분께 특별히 부탁한 것은 아버지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빠! 정말 춥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님이 약속하신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큰 코가 있잖아요~. 이 정도의 추위 정도 조금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러납니다만, 뭐 대수롭지 않겠지요. 힘내세요, 아버지-! 하나님이, 할머니가, 어머니가 또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기쁨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아빠~ 사랑해요!!
해바라기 모양(중3/1995) 해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또 봐도 자꾸 보고 싶다, 너의 그 마음이 커지기만 한다. 애틋한 네 가슴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그리움이 깊어져 어느새 까맣게 탔네. 해바라기야. 그런 네 모습이 부끄럽구나, 사랑의 해님 앞에 그만 고개를 숙였구나. 해바라기 모양(중3/1995) 해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또 봐도 자꾸 보고 싶다, 너의 그 마음이 커지기만 한다. 애틋한 네 가슴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그리움이 깊어져 어느새 까맣게 탔네. 해바라기야. 그런 네 모습이 부끄럽구나, 사랑의 해님 앞에 그만 고개를 숙였구나.
서원 가장 좋을 때 퇴직하겠다며 새마을금고연합회에 사표를 낸 지 3년이 됐다. 1972년 들어 1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큰 일은 뭐니뭐니 해도 새마을금고법을 제정하고 10여 년의 신협법 전셋집에서 벗어나 내 집으로 이사한 그것들이 멋지게 떠날 수 있는 때라고 생각되었다. 정작 준비도 없는데 모두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젊은 혈기(?)로 퇴직하니 막막했다. 그 글, 한창 확산되던 오락실을 중부시장 안에 내놓으면서 옆에서 빵을 굽기도 하고 그게 잘 안 돼서 기원을 내놓기도 하고 다 정리해서 부천의 자판기 제조판매사를 맡기도 했는데 다 실패였다. 남은 얼마간의 돈을 빌려준 농기구 사업이 잘 되면 그나마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일을 도와주기를 2년,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지방 농협 창고에 재고로 쌓인 농기구 판매를 위해 그 넓은 경상남도 지역의 면 단위를 한 바퀴 돌면 거의 탈진 상태였다. 적지만 차곡차곡 가져다 준 월급 생활에 익숙했던 아내는 어느새 수익도 기대도 없는 생활 속에서 3년여를 보냈고, 그때마다 날아오는 주택담보대출 상환 독촉으로 화를 낼 법도 한데 편안한 얼굴로 여전히 나를 반긴다. 내게 내는 짜증과 요구와 눈물은 아침, 저녁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흘린 것이다. “이 옆 개척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너무 생색을 낸대요. 오늘 저녁에 같이 참석하실래요?” 그날 지친 몸으로 참석했는데 많은 혜택을 받았고, 그 집회 내내 참석했다. 이를 고맙게 생각하는 그 교회 목사님이 아내에게 한 번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셔서 흔쾌히 환영했더니 제가 없을 때 목사님이 방문해 주셨다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입을 다물고, “이 댁에 서원의 자녀가 있습니까? “들으셨다.”…네?… 있습니다 무심코 5~6년 전 일이 생각나서 들킨 사람처럼 대답했더니 그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자고 해서 함께 기도한다고 이름을 수첩에 적고, 시편 144:12-14 말씀으로 우리 집을 위해 큰 축복의 말씀과 기도를 해주셨다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기 5~6년 전인 1980년 첫째 딸에 이어 둘째 딸을 낳았다.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 조금 서운했지만 엄마와 함께 건강한 게 고마웠다. 그런데 생후 두 달도 안 돼 아침과 저녁에 우는 소리를 했고, 동네 병원에 가면 감기라고도 해 배탈이 났다고도 했다. 기억도 새롭던 그해 6월 20일, 밤새 꾸물거리던 아이를 데리고 아내는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하루도 거른 적 없는 내 아침을 챙겨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서둘러 나갔고, 나는 교육원 신축 관계로 구청을 거쳐 조금 늦게 사무실에 도착하자 전화가 걸려왔다. 이대 동대문병원인데 서둘러 오라는 것이다. 마침 상여금이 있던 달이라 평소보다 많은 월급을 미리 달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근처 병원에 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내의 얼굴을 보면 심각성을 직감할 수 있다. “무슨 일이야?” “장중첩증이래요. 약물로 열려있었지만 할 수 없어서 급히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건강한 신생아에게 자주 생기는 병으로 장이 뒤틀리고 막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감기니 배탈이 난다며 동네 병원을 다녔는데 증상이 악화된 것이다. 그날도 이른 아침 아이를 업고 다시 동네 병원을 자주 찾는데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길목에서 세탁소를 하던 오영자 속장을 만났다. 이른 아침에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느냐며 증상을 얘기했더니 아기의 병은 알 수 없으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 서랍 속에서 돈을 꺼내주셔서 이 병원에 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약물을 넣고 비비며 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렇게는 치료가 되지 않아 결국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수술실 입구의 나무 의자에 앉아 하느님, 저 아이를 살려주세요. 도와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정말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옆에 있는 아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한 기도였다. 오랜만에 발등이 얼음 같은 몸에 8개의 호스를 꽂은 몸으로 밀려났다. 수술은 잘 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동으로-아내는 며칠 잠도 못 자고 링거 방울을 세며 간병을 했다. 교회에서는 신경하 담임목사가 새벽기도 후 바로 방문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옆에 놓여 있던 산소통도 치워지고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나는 저녁에는 집에 가서 할머니께 거짓말을 해야 했어. 가벼운 복통인데 하루, 이틀 만에 퇴원한다고. 그런데 사흘째인가 사무실에 출근해 병원에 가니 아내가 졸도한 것이다. 음식을 버리고 잠도 안 자고 아이만 바라보다가 기진맥진한 것이다. 아내는 응급실에, 아기는 일반 병실에 내 정신이 없어서 아래층으로 뛰어가 겨우 숨을 고르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와 큰아이의 열이 40도가 넘는 것이다. 동네 병원에 입원시키고 어쨌든 아기는 잘 회복해서 8일 만에 퇴원을 했고 처음 수술한 걸 알게 된 할머니는 펑펑 울고. 큰 병을 고친 놈이 병을 고치지 않는다고 하여 둘째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도와주면 하나님을 위해 바치겠다는 서원은 내 스스로가 달리 생각해 본 적도 없이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건 그냥 입안에서 반복하던 말이야.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듣고 응답하고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항상 함께하실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서원 가장 좋을 때 퇴직하겠다며 새마을금고연합회에 사표를 낸 지 3년이 됐다. 1972년 들어 1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큰 일은 뭐니뭐니 해도 새마을금고법을 제정하고 10여 년의 신협법 전셋집에서 벗어나 내 집으로 이사한 그것들이 멋지게 떠날 수 있는 때라고 생각되었다. 정작 준비도 없는데 모두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젊은 혈기(?)로 퇴직하니 막막했다. 그 글, 한창 확산되던 오락실을 중부시장 안에 내놓으면서 옆에서 빵을 굽기도 하고 그게 잘 안 돼서 기원을 내놓기도 하고 다 정리해서 부천의 자판기 제조판매사를 맡기도 했는데 다 실패였다. 남은 얼마간의 돈을 빌려준 농기구 사업이 잘 되면 그나마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일을 도와주기를 2년,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지방 농협 창고에 재고로 쌓인 농기구 판매를 위해 그 넓은 경상남도 지역의 면 단위를 한 바퀴 돌면 거의 탈진 상태였다. 적지만 차곡차곡 가져다 준 월급 생활에 익숙했던 아내는 어느새 수익도 기대도 없는 생활 속에서 3년여를 보내고, 그때마다 날아오는 주택담보대출 상환 독촉으로 화를 낼 법도 한데, 편안한 얼굴로 여전히 나
사랑하는 아버지께,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일(일)힘들죠? (일)알고있네! 아빠 왈) 다들 바쁜 요즘. 적어도 한 번은 부모님의 소중함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부모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잔인하게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부모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 나는 정치권에 나가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나처럼 행복한 아이도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자주 만나 신뢰생활을 하게 되고 십계명을 알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절제하다 보니 나쁜 길에 빠지지 못하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의 사랑으로 건강하게 지금까지 성장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네요. 나에게 채워진 행복에 비해 나는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부끄럽습니다. 4남매 중에 제일 트러블이 많았던 것도 저였고, 제일 가운데가 좁았던 것도 제 모습. 가장 부족한것도 제 자신이었습니다. (문제가 아니면 문제가 아니야!)! 히히) 하지만 통증이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이제 달라집니다. 더 이상 이 상태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어느덧 고입을 눈앞에 둔 중3의 긴장 속에 하루하루입니다. 물론 걱정도 되고요. 아버지, 이제는 바빠질 거예요.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제 아버지가 동영 씨에게 주신 편지와 신문, 저는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느꼈어요. 그 고마움 때문인지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던 제가 처음으로 눈물샘이 터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늘 딸보다 아들을 더 사랑한다고 불평불만만 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언젠가 날개를 펴고 아빠 엄마 품에서 벗어나야 하는 우리. 그날 뒤로 슬그머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딸도 모르게 눈물을 닦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아빠, 저는 알았어요. 물론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모습, 즉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로 부모라는 것을 말이죠.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저의 부족한 글재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의 마음 알거라 믿습니다. 내가 멋진 딸로 성장하는 모습을 꼭 옆에서 지켜봐 주시고 쓰러질 때 깨워주세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1995, 3, 8 사랑하는 멋진 아빠의 멋진 딸 동향이가. 사랑하는 아버지께,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일(일)힘들죠? (일)알고있네! 아빠 왈) 다들 바쁜 요즘. 적어도 한 번은 부모님의 소중함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부모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잔인하게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부모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 나는 정치권에 나가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나처럼 행복한 아이도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자주 만나 신뢰생활을 하게 되고 십계명을 알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절제하다 보니 나쁜 길에 빠지지 못하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의 사랑으로 건강하게 지금까지 성장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네요. 나에게 채워진 행복에 비해 나는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부끄럽습니다. 4남매 중에 제일 트러블이 많았던 것도 저였고, 제일 가운데가 좁았던 것도 제 모습. 가장 부족한것도 제 자신이었습니다. (문제가 아니면 문제가 아니야!)! 히히) 하지만 통증이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이제 달라집니다. 더 이상 이 상태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어느덧 고입을 눈앞에 둔 중3의 긴장 속에 하루하루입니다. 물론 걱정도 되고요. 아버지, 이제는 바빠질 거예요.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제 아버지가 동영 씨에게 주신 편지와 신문, 저는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느꼈어요. 그 고마움 때문인지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던 제가 처음으로 눈물샘이 터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늘 딸보다 아들을 더 사랑한다고 불평불만만 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언젠가 날개를 펴고 아빠 엄마 품에서 벗어나야 하는 우리. 그날 뒤로 슬그머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딸도 모르게 눈물을 닦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아빠, 저는 알았어요. 물론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모습, 즉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로 부모라는 것을 말이죠.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저의 부족한 글재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의 마음 알거라 믿습니다. 내가 멋진 딸로 성장하는 모습을 꼭 옆에서 지켜봐 주시고 쓰러질 때 깨워주세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1995, 3, 8 사랑하는 멋진 아빠의 멋진 딸 동향이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너무 작아요’ 사랑하는 동향!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구나. 물론 너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왜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누나 말고는 그날 그 일이 있은 후에 뭔가 달라질 너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고, 물론 너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지만 동생이 아파도 솔직히 걱정되는 마음보다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는 누나는 그래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 당신의 모습에 화가 나 있었다. 아무튼 지금 언니는 가슴 한구석이 너무 아파. 동생을 믿지 못하는 못생긴 언니. 너도 알겠지만 언니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행복해지고, 정말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도 고3이라는 산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에 대한 이해보다는 답달이라고 해야 해? 이런 감정이 앞선다. 누구보다도 당신의 마음이 바쁜일을 정말 잘 알고 있는데. 동향아! 쓸모없는 주제에 너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언니를 용서해줘. 그리고 만약 여유가 있다면 이해도 부탁해. 언니는 내 동생 동향이 힘든 마라톤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단 말이야! 내 마음의 뚜껑을 열고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동향아!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승리하길 바란다. 내가 대신 뛰어줄 수는 없지만 이 언니는 열심히 응원해 줄게. 화이팅!! 사랑한다. 98.5. 15, 당신의 언니로부터.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너무 작아요’ 사랑하는 동향!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구나. 물론 너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왜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누나 말고는 그날 그 일이 있은 후에 뭔가 달라질 너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고, 물론 너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지만 동생이 아파도 솔직히 걱정되는 마음보다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는 누나는 그래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 당신의 모습에 화가 나 있었다. 아무튼 지금 언니는 가슴 한구석이 너무 아파. 동생을 믿지 못하는 못생긴 언니. 너도 알겠지만 언니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행복해지고, 정말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도 고3이라는 산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에 대한 이해보다는 답달이라고 해야 해? 이런 감정이 앞선다. 누구보다도 당신의 마음이 바쁜일을 정말 잘 알고 있는데. 동향아! 쓸모없는 주제에 너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언니를 용서해줘. 그리고 만약 여유가 있다면 이해도 부탁해. 언니는 내 동생 동향이 힘든 마라톤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단 말이야! 내 마음의 뚜껑을 열고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동향아!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승리하길 바란다. 내가 대신 뛰어줄 수는 없지만 이 언니는 열심히 응원해 줄게. 화이팅!! 사랑한다. 98.5. 15, 당신의 언니로부터.
D-100일에 D-100이라고 아침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수다를 떨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새벽 2시. D-99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흘러버린 수능 100일 전. 아마 어제 저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고등학교 3학년도 없었을 거예요. 너무 긴장해서인지 두려움을 잠시 잊으려 한다. 이제 ‘학창시절’이라는 이름도 저한테는 얼마 남지 않았군요. 99일 후면 사복을 입고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도시락과 그때까지도 미련이 남은 몇 권의 책을 책가방에 넣고 1초가 아까워서 빠른 걸음으로 시험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고입 연합시험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오늘 밤은 잠이 안 오네요. 또 100일이 오는 것도 아닌데. 어제 두 분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래,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이것이 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지켜봐 주세요. 동향이가 열심히 끝까지 달리고 또 달리고 결승점에 골인하는 그 순간까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 힘든 순간까지도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두 분이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눈감고 99일.)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해주셔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애들을. 1998, D-99 새벽에 향기가 나는 D-100일에 D-100이라고 아침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수다를 떨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새벽 2시. D-99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흘러버린 수능 100일 전. 아마 어제 저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고등학교 3학년도 없었을 거예요. 너무 긴장해서인지 두려움을 잠시 잊으려 한다. 이제 ‘학창시절’이라는 이름도 저한테는 얼마 남지 않았군요. 99일 후면 사복을 입고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도시락과 그때까지도 미련이 남은 몇 권의 책을 책가방에 넣고 1초가 아까워서 빠른 걸음으로 시험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고입 연합시험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오늘 밤은 잠이 안 오네요. 또 100일이 오는 것도 아닌데. 어제 두 분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래,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이것이 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지켜봐 주세요. 동향이가 열심히 끝까지 달리고 또 달리고 결승점에 골인하는 그 순간까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 힘든 순간까지도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두 분이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눈감고 99일.)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해주셔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애들을. 1998, D-99 새벽에 향기가 나
롯데월드에서 동운(대4/2005)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뿔뿔이 흩어져 있는 기억 속에는 단체로 학부모님들과 롯데월드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 하나는 그때 탔던 회전목마와 신밧드의 모험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역동적인 신밧드의 모험을 탔을 때, 특히 겁이 많은 엄마는 어린 제가 무서워할까봐 정작 두근거리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웅, 이건 안 무서워’라고 안심시키던 모습이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었습니다. 언니들과 여러가지 오랜 상의 끝에 롯데월드에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허리가 안 좋아서 오래 서 있거나 걷기 힘드니까 또 어차피 과격한 기구는 못 탈 거고 별로 재미가 없을까 봐 걱정했어요. 자, 오늘 어머니의 소녀시대 모습을 보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소리내어 웃으면서 소녀의 모습으로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엄마가 놀이공원을 좋아한다는 것을 20여 년 동안 몰랐어요. 놀이기구를 오르내리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다시 유치원 시절로 돌아갑니다. 제 손을 꼭 잡고 계신 엄마, 오늘은 제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엄마, 이거 하나도 안 무서워요” 롯데월드에서 동운(대4/2005)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뿔뿔이 흩어져 있는 기억 속에는 단체로 학부모님들과 롯데월드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 하나는 그때 탔던 회전목마와 신밧드의 모험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역동적인 신밧드의 모험을 탔을 때, 특히 겁이 많은 엄마는 어린 제가 무서워할까봐 정작 두근거리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웅, 이건 안 무서워’라고 안심시키던 모습이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었습니다. 언니들과 여러가지 오랜 상의 끝에 롯데월드에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허리가 안 좋아서 오래 서 있거나 걷기 힘드니까 또 어차피 과격한 기구는 못 탈 거고 별로 재미가 없을까 봐 걱정했어요. 자, 오늘 어머니의 소녀시대 모습을 보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소리내어 웃으면서 소녀의 모습으로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엄마가 놀이공원을 좋아한다는 것을 20여 년 동안 몰랐어요. 놀이기구를 오르내리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다시 유치원 시절로 돌아갑니다. 제 손을 꼭 잡고 계신 엄마, 오늘은 제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엄마, 이거 하나도 안 무서워요”
속(續)장애물 경기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운동회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의 축제 날 같았다. 한편으로는 씨름, 달리면서… 그러나 열기를 더해가는 것은 장애물 경기였다. 한 조가 출발하자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조가 출발선에 대기했다. 이번 조는 정 선수, 고 선수, 장 선수와 주 선수가 뛸 차례다. 출발 총성과 함께 힘차게 발진해 고 선수는 아예 장애물을 포기했고 정 선수는 두 번째 장애물에 걸려 그 역시 포기했다. 장 선수와 주 선수는 열심히 뛰며 장애물을 모두 넘기고 결승점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장 선수에게 뒤졌던 주희는 갑자기 열심히 뛰는 게 무의미해졌다. 점점 앞 주자와의 간격이 벌어졌다. 결승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추신수는 달리기를 그만두고 관중들 사이에서 나왔다. 거기서 전 조 우승자를 만났는데, 우승하고도 이만한 노트 몇 권인가 하고 상품을 들어 보였다. 저우 선수는 뛰지 않은 게 잘한 것 같다. 동영아,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미 알아주리라 믿는다. 공책 몇 권을 받은 장 선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후 다른 대회에 출전권이 주어져 많은 인기와 상을 받게 됐다. 주 선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리기를 포기한 고 선수와 정 선수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가 볼일을 보고 있지만 주 선수는 아직 관중 사이를 헤치고 있는 것이다. 운동회에서는 뛰어야 한다. 무언가를 하다가 옆에 신경쓰는 것을 좌고우면 우면(좌고우면 眄)한다고 한다. 그것은 결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도 꿈을 이룰까 말까 한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다. 동영아, 아빠는 너를 믿어. 무엇을 하든 당신과 같은 심성과 실력으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다.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결국 네가 하겠지만 최선을 다하면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다만 아버지는 더 나은 것을 기대했던 당신에게 힘든 일이 닥치는 것이나 오히려 정상적으로 뛴 것보다 못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하거나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평안을 주고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다시 정하자. 1997, 8, 14 동영이를 아끼는 아버지가. 속(續)장애물 경기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운동회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의 축제 날 같았다. 한편으로는 씨름, 달리면서… 그러나 열기를 더해가는 것은 장애물 경기였다. 한 조가 출발하자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조가 출발선에 대기했다. 이번 조는 정 선수, 고 선수, 장 선수와 주 선수가 뛸 차례다. 출발 총성과 함께 힘차게 발진해 고 선수는 아예 장애물을 포기했고 정 선수는 두 번째 장애물에 걸려 그 역시 포기했다. 장 선수와 주 선수는 열심히 뛰며 장애물을 모두 넘기고 결승점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장 선수에게 뒤졌던 주희는 갑자기 열심히 뛰는 게 무의미해졌다. 점점 앞 주자와의 간격이 벌어졌다. 결승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추신수는 달리기를 그만두고 관중들 사이에서 나왔다. 거기서 전 조 우승자를 만났는데, 우승하고도 이만한 노트 몇 권인가 하고 상품을 들어 보였다. 저우 선수는 뛰지 않은 게 잘한 것 같다. 동영아,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미 알아주리라 믿는다. 공책 몇 권을 받은 장 선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후 다른 대회에 출전권이 주어져 많은 인기와 상을 받게 됐다. 주 선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리기를 포기한 고 선수와 정 선수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가 볼일을 보고 있지만 주 선수는 아직 관중 사이를 헤치고 있는 것이다. 운동회에서는 뛰어야 한다. 무언가를 하다가 옆에 신경쓰는 것을 좌고우면 우면(좌고우면 眄)한다고 한다. 그것은 결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도 꿈을 이룰까 말까 한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다. 동영아, 아빠는 너를 믿어. 무엇을 하든 당신과 같은 심성과 실력으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다.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결국 네가 하겠지만 최선을 다하면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다만 아버지는 더 나은 것을 기대했던 당신에게 힘든 일이 닥치는 것이나 오히려 정상적으로 뛴 것보다 못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하거나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평안을 주고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다시 정하자. 1997, 8, 14 동영이를 아끼는 아버지가.
동영 군의 눈물이 떨어졌다는 말에 아버지는 그만 목이 메었다. 사실 어제 네 방에 들어간 후 아버지가 후회하고 너를 위로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하나는 저려오는 아빠의 마음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항상 아이인 네가 철이 들길 바라는-아픔을 함께하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동안 당신은 하고 싶은 대로 해왔지만 그렇게 되도록 버릇을 들이는 데 공범(?)인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은 자기 버릇 고치기가 힘든 것 같아. 그런데 지금까지의 버릇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정말 과감하게 그것을 고쳐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고쳐야 한다. 너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목표를 수정하라는 게 아니라 방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좀 힘들면 포기하고, 부딪히면 돌아가고, 한번 해보고 안 되면 그만이지, 이런 종류의 소극적인 사고와 행동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 모든 좋은 일은 힘들고 어려운 고비 너머에 있다고 하잖아? – 아빠는 당신이 분명히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봐도 당신에게 못 미치는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늘 갖는 아버지의 생각이다. -더 나은 열매를 위한 비바람이라고 생각하자. 그걸 경험한 사과가 더 맛이 나는 것처럼. 동영 군의 눈물이 떨어졌다는 말에 아버지는 그만 목이 메었다. 사실 어제 네 방에 들어간 후 아버지가 후회하고 너를 위로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하나는 저려오는 아빠의 마음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항상 아이인 네가 철이 들길 바라는-아픔을 함께하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동안 당신은 하고 싶은 대로 해왔지만 그렇게 되도록 버릇을 들이는 데 공범(?)인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은 자기 버릇 고치기가 힘든 것 같아. 그런데 지금까지의 버릇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정말 과감하게 그것을 고쳐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고쳐야 한다. 너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목표를 수정하라는 게 아니라 방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좀 힘들면 포기하고, 부딪히면 돌아가고, 한번 해보고 안 되면 그만이지, 이런 종류의 소극적인 사고와 행동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 모든 좋은 일은 힘들고 어려운 고비 너머에 있다고 하잖아? – 아빠는 당신이 분명히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봐도 당신에게 못 미치는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늘 갖는 아버지의 생각이다. -더 나은 열매를 위한 비바람이라고 생각하자. 그걸 경험한 사과가 더 맛이 나는 것처럼.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동영이! (할머니가 들으면 질투하실텐데… 요즘 힘들지?)? 사실 아빠는 네가 더 힘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세상살이의 문턱에서 이래서 힘들다는 네가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란다. 군에서 하는 말이 훈련으로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터에서 피를 잘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너는 훈련기간이다. 왜냐하면 네가 거느린 아이나 가족이 없으니까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영이 아빠의 진짜 생각은 이렇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은 즐겁고 좋을 때 웃는 방법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제발 잘 견디고 승리하는 내 딸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도한다. 동영아 파이팅!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동영이! (할머니가 들으면 질투하실텐데… 요즘 힘들지?)? 사실 아빠는 네가 더 힘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세상살이의 문턱에서 이래서 힘들다는 네가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란다. 군에서 하는 말이 훈련으로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터에서 피를 잘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너는 훈련기간이다. 왜냐하면 네가 거느린 아이나 가족이 없으니까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영이 아빠의 진짜 생각은 이렇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은 즐겁고 좋을 때 웃는 방법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제발 잘 견디고 승리하는 내 딸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도한다. 동영아 파이팅!
가까운 장래에 아버지(2003)가 아직 60세도 안 됐는데 내가 사위를 얻는다. 장인어른, 장모님들은 항상 나보다 나이가 많으셨는데. 그동안 사진 속에서 웃기만 했던 동영이가 내 지갑을 열고 시집을 간다? 어지간히 아버지를 따라 나만 알았지만 지금은 내 남편을 따라간다. 40평짜리 아파트도 좁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텅텅 비었을 뿐 가져갔다는 책상에는 아직도 당신의 잔상이 그대로 붙어 있다. 한참을 늘어놓고 떠나면서도 챙길 수 없기는 마찬가지야. 중고등학교 때 콤비락으로 만들어준 화장대 대학생이 돼서 예쁜 화장대로 바꿔줬는데 동생들이랑 매일 아침 거울싸움을 했는데 이제 됐을까, 나 혼자 신부 화장대 앞에 앉아 있으면. 가까운 장래에 아버지(2003)가 아직 60세도 안 됐는데 내가 사위를 얻는다. 장인어른, 장모님들은 항상 나보다 나이가 많으셨는데. 그동안 사진 속에서 웃기만 했던 동영이가 내 지갑을 열고 시집을 간다? 어지간히 아버지를 따라 나만 알았지만 지금은 내 남편을 따라간다. 40평짜리 아파트도 좁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텅텅 비었을 뿐 가져갔다는 책상에는 아직도 당신의 잔상이 그대로 붙어 있다. 한참을 늘어놓고 떠나면서도 챙길 수 없기는 마찬가지야. 중고등학교 때 콤비락으로 만들어준 화장대 대학생이 돼서 예쁜 화장대로 바꿔줬는데 동생들이랑 매일 아침 거울싸움을 했는데 이제 됐을까, 나 혼자 신부 화장대 앞에 앉아 있으면.
Danny Boy 보경(2005)의 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아버지는 많은 말 대신 danny Boy를 틀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날 밤 딸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복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을 뿐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빠가 들어가고 딸은 거실에 혼자 남아 ‘danny boy’를 듣는다. 아빠 얘기가 시작된다. 피아노 선율에 담기고, 여성의 목소리에 담기고, 팬 플루트의 조용한 바람소리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딸의 혼담에서 가벼운 말다툼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이유일까? 딸에게는 가볍게 지나간, 이미 잊혀진 사건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수많은 잔상을 남긴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딸을 빨리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딸에게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양보했겠지만 철없는 딸은 아버지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좋은 기회를 응석부리듯 투정을 부리려는 딸에게 아버지는 얼굴까지 붉히며 설득한다. 아빠 품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좀 빨리 가라는 것뿐인데. 딸의 고집은 아버지를 닮아 완고했다. 혼담은 이제 물거품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딸에게 얼굴을 붉힌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아버지는 딸의 눈치를 보게 됐다. 혹시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서운해 하지는 않는지. 그날 밤 아버지는 딸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여느 때와 달리 딸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아버지에게 눈을 돌리는 것 같지도 않고, 야식을 준비하는 것도 없고, 수업을 듣는데 살짝 와서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도 없다. 멀리 떨어져서 소파에 앉아 TV만 보고 있어. 노파심에 살며시 딸의 마음을 살피지만 딸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뭔가가 있다. 오늘은 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버지는 TV 드라마에 열중하는 딸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danny boy를 틀어놓고 들어갔다. TV 소리에 묻혀 있어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딸은 분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얘기를-TV를 끄고 dannyboy를 듣는 딸의 마음이 편치 않다. 약간 취기가 도는 듯한 얼굴로 자신의 기분을 살피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TV에 빠져서 본 건데. 나는 이미 잊은 일이었는데. 그 일로 계속 신경 쓰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한쪽으로 무겁게 저려온다. danny boy를 다 듣듯 딸은 잠을 잘 수 없다. 아마 아버지도 방 안에서 아득히 들리는 danny boy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딸은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아빠 사랑해요. 아직은 아버지 품이 더 좋아요! Danny Boy 보경(2005)의 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아버지는 많은 말 대신 danny Boy를 틀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날 밤 딸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복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을 뿐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빠가 들어가고 딸은 거실에 혼자 남아 ‘danny boy’를 듣는다. 아빠 얘기가 시작된다. 피아노 선율에 담기고, 여성의 목소리에 담기고, 팬 플루트의 조용한 바람소리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딸의 혼담에서 가벼운 말다툼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이유일까? 딸에게는 가볍게 지나간, 이미 잊혀진 사건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수많은 잔상을 남긴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딸을 빨리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딸에게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양보했겠지만 철없는 딸은 아버지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좋은 기회를 응석부리듯 투정을 부리려는 딸에게 아버지는 얼굴까지 붉히며 설득한다. 아빠 품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좀 빨리 가라는 것뿐인데. 딸의 고집은 아버지를 닮아 완고했다. 혼담은 이제 물거품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딸에게 얼굴을 붉힌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아버지는 딸의 눈치를 보게 됐다. 혹시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서운해 하지는 않는지. 그날 밤 아버지는 딸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여느 때와 달리 딸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아버지에게 눈을 돌리는 것 같지도 않고, 야식을 준비하는 것도 없고, 수업을 듣는데 살짝 와서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도 없다. 멀리 떨어져서 소파에 앉아 TV만 보고 있어. 노파심에 살며시 딸의 마음을 살피지만 딸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뭔가가 있다. 오늘은 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버지는 TV 드라마에 열중하는 딸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danny boy를 틀어놓고 들어갔다. TV 소리에 묻혀 있어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딸은 분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얘기를-TV를 끄고 dannyboy를 듣는 딸의 마음이 편치 않다. 약간 취기가 도는 듯한 얼굴로 자신의 기분을 살피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TV에 빠져서 본 건데. 나는 이미 잊은 일이었는데. 그 일로 계속 신경 쓰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한쪽으로 무겁게 저려온다. danny boy를 다 듣듯 딸은 잠을 잘 수 없다. 아마 아버지도 방 안에서 아득히 들리는 danny boy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딸은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아빠 사랑해요. 아직은 아버지 품이 더 좋아요!
천년 바뀌고 천년 바뀌고 보경이가 18이라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아, 대한민국 주민이 되었다는 거잖아. 보경아, 세상에 온 걸 환영해. 그리고 우리 집에 온 걸 더 감사하게 생각해. 오늘에 들뜨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네가 더 기특해. 그래 항상 좋은 일은 힘든 저편에 있다고 했지. – 내년 생일 파티를 가득 준비하기 위해 이것만 줄일 거야. – 2000, 3, 8 너의 열렬한 황파파가 천년 바뀌고 천년 바뀌고 보경이가 18이라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아, 대한민국 주민이 되었다는 거잖아. 보경아, 세상에 온 걸 환영해. 그리고 우리 집에 온 걸 더 감사하게 생각해. 오늘에 들뜨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네가 더 기특해. 그래 항상 좋은 일은 힘든 저편에 있다고 했지. – 내년 생일 파티를 가득 준비하기 위해 이것만 줄일 거야. – 2000, 3, 8 당신의 열렬한 팬 아빠가
연어 이야기의 기러기 떼가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떼를 지어 날기 때문이었을까. 먹이가 아까워 홀로 떨어진 기러기는 저 하늘의 기러기가 아닐 것이다. 화창한 교복에 웃음 띤 연어들이 교문을 쏟아져 나오듯 나온다. 수다스럽게 떠들고, 밀치고, 때리고, 장난치고, 500냥의 떡볶이를 오물오물하게 만드는 연어가 어쩜 그렇게 예쁠까. 유명 메이커의 패션 수트가 입고 싶은 연어, 50000량의 레스토랑 정식에 호기심이 생겨 홀로 떨어진 불쌍한 연어는 마치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한 말을 선생님의 잔소리로만 듣던 바로 그였다. 백화점 쇼윈도에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옷이 내 옷걸이에선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걸까. 보경, 잃어버린 가슴을 오랜만에 되찾은 시간이었다. 거친 파도와 오염된 세태 속에서 용케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아름다운 마음이 은빛연어의 모습을 통해 되살아나는 듯하다. 무지개가 그리워서 세상을 보면 위험해. 하지만 봐야 한다. 그 꿈을 가지고 헤엄쳐 녹색 강에 다다르면 연어는 연어가 된다. 불곰 발톱과 졸음이 쏟아지는 강 시간도 있지만 우리는 폭포에 올라야 한다. “어렵고 중요한 것이 이렇게도 단순한 것인가?”라고 한탄해도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지 않은 것”을 깨닫는다 해도 우리는 그곳에 올라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철저한 삶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나뭇잎은 흘러서 썩을 것이다. 연어는 거슬러 올라가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 생명 또한 그렇게 시련과 싸워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꿈을 찾는 것-힘들지만 아름다운 그 일이라고. 내 사랑 연어야. 아빠는 연어를 읽었는지 보경이를 읽었는지 모르겠네. ‘보경연어’의 아름다운 꿈을 감사하며 힘찬 소상을 살펴보자. 그 아름다운 꿈과의 만남을 위해서. 2000, 3, 12, 23:50 은빛연어 아버지가 연어 이야기의 기러기 떼가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무리지어 날기 때문이었을까. 먹이가 아까워 홀로 떨어진 기러기는 저 하늘의 기러기가 아닐 것이다. 화창한 교복에 웃음 띤 연어들이 교문을 쏟아져 나오듯 나온다. 수다스럽게 떠들고, 밀치고, 때리고, 장난치고, 500냥의 떡볶이를 오물오물하게 만드는 연어가 어쩜 그렇게 예쁠까. 유명 메이커의 패션 수트가 입고 싶은 연어, 50000량의 레스토랑 정식에 호기심이 생겨 홀로 떨어진 불쌍한 연어는 마치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한 말을 선생님의 잔소리로만 듣던 바로 그였다. 백화점 쇼윈도에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옷이 내 옷걸이에선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걸까. 보경, 잃어버린 가슴을 오랜만에 되찾은 시간이었다. 거친 파도와 오염된 세태 속에서 용케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아름다운 마음이 은빛연어의 모습을 통해 되살아나는 듯하다. 무지개가 그리워서 세상을 보면 위험해. 하지만 봐야 한다. 그 꿈을 가지고 헤엄쳐 녹색 강에 다다르면 연어는 연어가 된다. 불곰 발톱과 졸음이 쏟아지는 강 시간도 있지만 우리는 폭포에 올라야 한다. “어렵고 중요한 것이 이렇게도 단순한 것인가?”라고 한탄해도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지 않은 것”을 깨닫는다 해도 우리는 그곳에 올라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철저한 삶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나뭇잎은 흘러서 썩을 것이다. 연어는 거슬러 올라가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 생명 또한 그렇게 시련과 싸워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꿈을 찾는 것-힘들지만 아름다운 그 일이라고. 내 사랑 연어야. 아빠는 연어를 읽었는지 보경이를 읽었는지 모르겠네. ‘보경연어’의 아름다운 꿈을 감사하며 힘찬 소상을 살펴보자. 그 아름다운 꿈과의 만남을 위해서. 2000,3,12,23:50 은빛연어 아빠가
아버지의 연어에게 감히 답장을 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벅찬 감동과 감사.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꼭 드리고 싶은 글이었어요. 무서운 강물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은빛연어와 또 다른 강물을 뛰어넘으려 오늘도 벅찬 몸짓으로 물줄기를 가르는 듬직한 아빠연어. 아빠, 아빠에게는 잃어버린 순수함보다 아직 잃어야 할 순수함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항상 사랑스러운 은빛연어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우리 아기연어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 보세요. 사랑한다. 2000년에 강물 앞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은빛연어 드림 아버지의 연어에게 감히 답장을 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벅찬 감동과 감사.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꼭 드리고 싶은 글이었어요. 무서운 강물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은빛연어와 또 다른 강물을 뛰어넘으려 오늘도 벅찬 몸짓으로 물줄기를 가르는 듬직한 아빠연어. 아빠, 아빠에게는 잃어버린 순수함보다 아직 잃어야 할 순수함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항상 사랑스러운 은빛연어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우리 아기연어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 보세요. 사랑한다. 2000년에 강물 앞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은빛연어 드림
치연어 이야기 거센 강물을 바라보며 든든한 아버지 연어 뒤에서 열심히 몸을 풀던 치연어가 때가 되어 힘껏 온몸에 힘을 모아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얀 거품 속으로 뛰어든, 이제 보이지 않는 그 젊은 연어는 더 이상 어린 연어가 아니잖아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습니다. 예상치 못한 흐름에 자주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빠 연어가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것을 하나씩 손에 넣으면서 더 튼튼한 몸을 만들어 갑니다. 여기는 모래바람이 불고 추위가 심한 곳입니다. 두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흐름을 나누고 있습니다. 내 꿈을 낳을 수 있는 힘을 키워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떠나온 바로 그 장소로 돌아가 빛나는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사랑합니다。 7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고운 빛깔의 알을 낳고, 또 새로운 흐름에 뛰어든 아버지 연어를 응원합니다! 가끔 흐름을 헤치며 만나요, 아빠! 2006. 3. 29. 한몽기술대학교 1학년 회화 보충수업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넘치는 감동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7년 전에 어렸다 연어, 3번 주자 보경드림. 치연어 이야기 거센 강물을 바라보며 든든한 아버지 연어 뒤에서 열심히 몸을 풀던 치연어가 때가 되어 힘껏 온몸에 힘을 모아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얀 거품 속으로 뛰어든, 이제 보이지 않는 그 젊은 연어는 더 이상 어린 연어가 아니잖아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습니다. 예상치 못한 흐름에 자주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빠 연어가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것을 하나씩 손에 넣으면서 더 튼튼한 몸을 만들어 갑니다. 여기는 모래바람이 불고 추위가 심한 곳입니다. 두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흐름을 나누고 있습니다. 내 꿈을 낳을 수 있는 힘을 키워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떠나온 바로 그 장소로 돌아가 빛나는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사랑합니다。 7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고운 빛깔의 알을 낳고, 또 새로운 흐름에 뛰어든 아버지 연어를 응원합니다! 가끔 흐름을 헤치며 만나요, 아빠! 2006. 3. 29. 한몽기술대학교 1학년 회화 보충수업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넘치는 감동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7년 전에 어렸다 연어, 3번 주자 보경드림.
산책 보경(대3/2003) 어젯밤 내가 맥주 250cc 때문에 얼굴이 빨개져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도 불편해 보였다. 내 술기운을 들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좋지 않았다. 최근 회사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탓에 아버지는 지난 몇 주간 깊은 고민을 하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얼굴은 맥주 때문인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은 외출을 하지 말고 아빠를 지켜야 해. 아버지는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부은 얼굴로 낮이 지날 무렵에야 눈을 떴다. 귀여움을 받기를 바라는 강아지 모양의 아버지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따로 드릴 농담이나 이야깃거리가 없었기에 저는 그렇게 아버지 곁에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다시 주무셨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뭔가 괴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오랜 정적을 깨뜨릴 의무감이 점점 강해졌다. 나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날씨 좋네. 산책이라도 갈까? 아버지는 좀 쉬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싶지 않으신가봐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때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손에는 휴대전화를 꼭 쥔 채 소파에 누워 계셨다.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음에 틀림없다. 어디론가 연락해 무언가를 물어본 뒤 답을 얻지 못한 채 전화를 한 뒤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소식일까. 그 소식이 힘든 아빠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해가 저물려고 빛을 모으고 있다. 하나하나 빛을 모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신중한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나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한다. 아버지의 변덕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아빠는 지금 산책을 하고 싶은 거야. 나도 언젠가 이유 없이 갑자기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소풍 갈 때처럼 마음이 들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힘든 여행을 떠나는 듯 표정이 어둡다. 장미원길을 따라 4.19탑길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보는 주택가, 내가 초등학교 때 숙제를 하러 들른 한 친구의 집 모양 같은 주택.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순서없이 지껄인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용히 한마디 대답을 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하늘이 파랗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겉옷을 벗고 걸었을 정도로 날씨는 따뜻했다. 오랜만의 아빠와의 산책, 하지만 아빠는 말이 없다. 나는 굳이 아빠에게 말을 걸지 않아. 정적이 흐르는 주택가를 거닐며 아버지를 향하지 못했던 나의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진다. 북한산국립공원 매표소 앞까지 올라간 뒤 아버지는 한 도로변 벤치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내 관심을 끌었던 하얀 진돗개와 한 노인에게 시선을 준다. 턱수염을 짧게 기른 할아버지는 등산 점퍼를 입고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아마 젊었을 때 즐겨 듣던 팝송 같은 것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 앞에는 흔히 백구라 부르는 흰 진돗개가 귀를 세우고 앉았다. 할아버지와 오랜 친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멋져서 아빠에게 말을 걸었더니 아빠는 한참을 웃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오전에 산을 오른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내려왔다. 각자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는 지금 나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고민이 있었다면 분명 우리 아버지처럼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 약수터에 들러 약수를 한 모금 마신 후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만두 종류가 많아 유명해진 한 중국집에 들어가 만두를 사주셨다. 걱정이 많은 아버지에게는 그래도 끼니를 놓친 딸의 뱃속이 중요했던 것 같다.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맛있다고 느낀 것보다 몇 배나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계속 입을 다물고 계셨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고민 때문에 어두워진 아버지의 얼굴이 가슴 아프다. 여전히 아버지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에는 기척이 없다. 빨리 벨이 울려 아버지에게 힘을 실어주는 소식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미 해는 빛을 달려 산 너머로 넘어갔다. 다시 우리는 장미원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산책 보경(대3/2003) 어젯밤 내가 맥주 250cc 때문에 얼굴이 빨개져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도 불편해 보였다. 내 술기운을 들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좋지 않았다. 최근 회사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탓에 아버지는 지난 몇 주간 깊은 고민을 하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얼굴은 맥주 때문인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은 외출을 하지 말고 아빠를 지켜야 해. 아버지는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부은 얼굴로 낮이 지날 무렵에야 눈을 떴다. 귀여움을 받기를 바라는 강아지 모양의 아버지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따로 드릴 농담이나 이야깃거리가 없었기에 저는 그렇게 아버지 곁에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다시 주무셨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뭔가 괴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오랜 정적을 깨뜨릴 의무감이 점점 강해졌다. 나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날씨 좋네. 산책이라도 갈까? 아버지는 좀 쉬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싶지 않으신가봐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때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손에는 휴대전화를 꼭 쥔 채 소파에 누워 계셨다.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음에 틀림없다. 어디론가 연락해 무언가를 물어본 뒤 답을 얻지 못한 채 전화를 한 뒤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소식일까. 그 소식이 힘든 아빠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해가 저물려고 빛을 모으고 있다. 하나하나 빛을 모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신중한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나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한다. 아버지의 변덕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아빠는 지금 산책을 하고 싶은 거야. 나도 언젠가 이유 없이 갑자기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소풍 갈 때처럼 마음이 들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힘든 여행을 떠나는 듯 표정이 어둡다. 장미원길을 따라 4.19탑길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보는 주택가, 내가 초등학교 때 숙제를 하러 들른 한 친구의 집 모양 같은 주택.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순서없이 지껄인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용히 한마디 대답을 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하늘이 파랗다.
한여름 풍경, 보경(대4/2005)의 중복이 오기 2~3일 전 우리 고기를 녹이려던 무더위. 할머니는 양말까지 벗고(그래도 목도리는 하고 있었네요.) 곰순이는 드디어 현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고, 어머니는 드디어!! 에어컨 전원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동향 언니는 실내 온도 19도 사무실에서 감격적인 첫 근무를 마쳤고, 저는 아빠가 없는 틈을 타 속옷 바람으로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기록적인 폭염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그래도 중복이 지나고 더위가 좀 가라앉았어요. 지금은 빗방울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몸도 마음도 식혀 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반갑고 감사할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밤새 온몸으로 이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예요. 태어나서 가장 더웠던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자신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맛은 어떻습니까. 방해될까봐 전화를 여러번 걸곤 했어요. 오늘 아버지의 메일은 정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아빠를 향한 이 딸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넓은 콘도 거실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시원한 산바람을 벗 삼아 자신의 소중한 역사를 적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된 것이, 이 딸은 매우 좋아합니다. 부디 목표점까지 올라가서 깃발을 꽂고 오세요-. 저는 요즘 농촌봉사활동 준비에, 중국선교준비, 졸업준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땅을 지키는 어르신들께 어떻게 하면 희망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지, 아무 죄 없이 상처받은 농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꿈이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지, 재중동포 사회의 상처와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세계를 품어야 할지 머리와 가슴을 펴고 깊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기분 좋은 밤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는, 이렇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랑합니다. 한여름 풍경, 보경(대4/2005)의 중복이 오기 2~3일 전 우리 고기를 녹이려던 무더위. 할머니는 양말까지 벗고(그래도 목도리는 하고 있었네요.) 곰순이는 드디어 현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고, 어머니는 드디어!! 에어컨 전원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동향 언니는 실내 온도 19도 사무실에서 감격적인 첫 근무를 마쳤고, 저는 아빠가 없는 틈을 타 속옷 바람으로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기록적인 폭염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그래도 중복이 지나고 더위가 좀 가라앉았어요. 지금은 빗방울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몸도 마음도 식혀 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반갑고 감사할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밤새 온몸으로 이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예요. 태어나서 가장 더웠던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자신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맛은 어떻습니까. 방해될까봐 전화를 여러번 걸곤 했어요. 오늘 아버지의 메일은 정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아빠를 향한 이 딸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넓은 콘도 거실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시원한 산바람을 벗 삼아 자신의 소중한 역사를 적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된 것이, 이 딸은 매우 좋아합니다. 부디 목표점까지 올라가서 깃발을 꽂고 오세요-. 저는 요즘 농촌봉사활동 준비에, 중국선교준비, 졸업준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땅을 지키는 어르신들께 어떻게 하면 희망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지, 아무 죄 없이 상처받은 농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꿈이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지, 재중동포 사회의 상처와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세계를 품어야 할지 머리와 가슴을 펴고 깊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기분 좋은 밤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는, 이렇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랑합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오늘 아침, 아마 내가 나를 누르고 있던 것이 찢어졌을 것이다. 그런 일에 뭘 그렇게 어이가 없었는지 토하는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다. 요즘 사심 상할까봐 평소보다 온 신경을 다 쓰는 너의 모습을 모른척 하고 있어. 기쁜 일도 없는데 열심히 즐기려는 당신의 표정 속에 가슴이 찡해지는 것이 요즘입니다. – 직장이라고 뭔가 불안정한 동향이 앞사람들의 마음이 오싹할 것 같다. 당연히 격려해주고 위로해줘야 하는데. – 소리를 지르지만 미지의 황무지로 떠나는 보경이도 내 걱정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아버지가 상처받을까봐 일일이 신경 쓰는 모습이. 내가 떠나기 전에 좋은 소식을 줘야 하는데 너무 절박한 것 같아요. –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은, 그래도 버틸 수 있지만 온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문제가 마음에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그 선한 눈 속의 그림자로 보입니다. – 모른 척 하면서도 실직으로 행여 이 집에 어려운 일이 생길까 걱정하시는 할머니, 애비 눈치나, 에미 마음을 살피거나 마음이 편치 않은 어버이날-당신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것이 가족이자 당신입니다. 참 어렵고 우리는 잊고 있지만 함께하며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사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잘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지금은 카네이션조차 그저 그런 연륜이지만 올해 올곧게 자란 당신의 자녀들이 빠알간 카네이션보다 더 진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06년 어버이날 아직 철없는 당신의 철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오늘 아침, 아마 내가 나를 누르고 있던 것이 찢어졌을 것이다. 그런 일에 뭘 그렇게 어이가 없었는지 토하는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다. 요즘 사심 상할까봐 평소보다 온 신경을 다 쓰는 너의 모습을 모른척 하고 있어. 기쁜 일도 없는데 열심히 즐기려는 당신의 표정 속에 가슴이 찡해지는 것이 요즘입니다. – 직장이라고 뭔가 불안정한 동향이 앞사람들의 마음이 오싹할 것 같다. 당연히 격려해주고 위로해줘야 하는데. – 소리를 지르지만 미지의 황무지로 떠나는 보경이도 내 걱정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아버지가 상처받을까봐 일일이 신경 쓰는 모습이. 내가 떠나기 전에 좋은 소식을 줘야 하는데 너무 절박한 것 같아요. –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은, 그래도 버틸 수 있지만 온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문제가 마음에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그 선한 눈 속의 그림자로 보입니다. – 모른 척 하면서도 실직으로 행여 이 집에 어려운 일이 생길까 걱정하시는 할머니, 애비 눈치나, 에미 마음을 살피거나 마음이 편치 않은 어버이날-당신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것이 가족이자 당신입니다. 참 어렵고 우리는 잊고 있지만 함께하며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사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잘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지금은 카네이션조차 그저 그런 연륜이지만 올해 올곧게 자란 당신의 자녀들이 빠알간 카네이션보다 더 진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06년 어버이날 아직 철없는 당신의 철이.
미스 KOICA 보경(2006) 오늘 새벽 꿈에서 울고 있었어요. 몽골에서 잠깐 귀국해서 집에 온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나서 막 울었어요. 엄마도 그렇고 동향 언니도 그렇고 은이도 나왔어요. 꿈에서 울고 있는데 눈물이 옆으로 흘러 깜짝 놀라서 눈을 뜨면 정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어요. 새벽 3시 55분 다들 자고 있는데 혼자 일어나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안고 울었어요. 웃기도 했어요. 평소에는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적은 없어요. 3주간의 여행은 자주 다녀왔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깨닫지 못했던 그리움이 더해졌는지, 진정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어도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아요. 방에 침대가 4개 있는데 옆 단원이 혹시 잠에서 깰까봐 이불을 덮고 한참을 울었어요. 걸리면 진짜 확 팔리잖아요. 너무 눈물이 흐르기 쉬워서 힘도 주지 않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했어요. 여기가 몽골이면. 좋은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까지 이 울적한 기분이 들면 어쩌나 생각했습니다만, 아침에는 눈이 조금 부어 있는 것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훈련원이 광릉수목원 뒷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산불 한 번 없는 나라의 정기 어린 산과 함께 봄을 보내고 함께 새싹을 돋우며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책로도 잘 되어 있고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녀도 분실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유익한 강의를 들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손빨래도 하고 새벽에 자기가 일어나거나 아침운동도 하고. 3끼 식사도 제대로 하고 있고, 2Kg이나 늘었어요.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 속에서 지냈는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주도 안남았는데 10정도 지났는데 정말 보고싶어요. 저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은도, 동향 언니도, 통영 언니도, 오빠도, 곰순이도 보고 싶어요. 목소리도 듣고 싶고 같이 식사도 하고 싶고. 동향 언니에게 제 메일에 들어가서 유환기 교관이 보낸 메일을 열고 사진을 다운받아 보라고 하세요. 훈련소에서의 제 모습입니다.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별명이 미스코이카라입니다. 건강하세요~. 또 연락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스 KOICA 보경(2006) 오늘 새벽 꿈에서 울고 있었어요. 몽골에서 잠깐 귀국해서 집에 온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나서 막 울었어요. 엄마도 그렇고 동향 언니도 그렇고 은이도 나왔어요. 꿈에서 울고 있는데 눈물이 옆으로 흘러 깜짝 놀라서 눈을 뜨면 정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어요. 새벽 3시 55분 다들 자고 있는데 혼자 일어나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안고 울었어요. 웃기도 했어요. 평소에는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적은 없어요. 3주간의 여행은 자주 다녀왔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깨닫지 못했던 그리움이 더해졌는지, 진정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어도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아요. 방에 침대가 4개 있는데 옆 단원이 혹시 잠에서 깰까봐 이불을 덮고 한참을 울었어요. 걸리면 진짜 확 팔리잖아요. 너무 눈물이 흐르기 쉬워서 힘도 주지 않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했어요. 여기가 몽골이면. 좋은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까지 이 울적한 기분이 들면 어쩌나 생각했습니다만, 아침에는 눈이 조금 부어 있는 것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훈련원이 광릉수목원 뒷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산불 한 번 없는 나라의 정기 어린 산과 함께 봄을 보내고 함께 새싹을 돋우며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책로도 잘 되어 있고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녀도 분실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유익한 강의를 들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손빨래도 하고 새벽에 자기가 일어나거나 아침운동도 하고. 3끼 식사도 제대로 하고 있고, 2Kg이나 늘었어요.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 속에서 지냈는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주도 안남았는데 10정도 지났는데 정말 보고싶어요. 저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은도, 동향 언니도, 통영 언니도, 오빠도, 곰순이도 보고 싶어요. 목소리도 듣고 싶고 같이 식사도 하고 싶고. 동향 언니에게 제 메일에 들어가서 유환기 교관이 보낸 메일을 열고 사진을 다운받아 보라고 하세요. 훈련소에서의 제 모습입니다.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별명이 미스코이카라입니다. 건강하세요~. 또 연락합니다。 사랑합니다.
새 삶, 보경이(2006)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면 눈물이 돼 나올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아빠의 메일을 읽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지난 한 해를 통해, 올해 초에 많은 것을 통해 그 꿈에 이끌린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귀한 생각을 주고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기립니다. 아버지 안에서 죽을 것들이 죽고 그 죽음으로 새 생명으로 거듭난 그 새벽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함이 가득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 걱정도 많고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기쁨과 감사의 삶을 즐기고 계셨군요. 좋습니다. 몽골에서 이럴 때는 “생뱀!”이라고 해요. 홈스테이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단원들 중에서 제일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드릴 말씀이 정말 많아요. 그중에 한가지만 말씀드릴게요. 그 안에 지난 3주간의 홈스테이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홈스테이가 끝나는 날 아침. 언제나처럼 늦잠을 잔 저를 어머니가 깨웠어요. 봉~ 봉~이래(보~경!) 일어나!) 눈을 떠보니 또 늦었대요. 오늘 두 달 동안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치는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는데요. 어제저녁에엄마와함께보고서를쓰는바람에늦잠을잤습니다.(보고서에몽골어로작성해야할부분이있는데엄마에게내가무엇을쓰고싶은지말씀드렸더니엄마는눈치껏알아듣고예쁜글씨로만들어주셨습니다. 10일치의 보고서를 말이죠!)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거실로 나왔어요. 거실에는 지난 3주 동안과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요리를 즐기고 있고 어머니와 누나가 러시아 항공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러시아 항공에서 공수해 온 기내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요구르트만 먹고 나가야 했어요. 수료식을 잘 마치고 집에 와서 짐을 챙겨서 이제 제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어요. 어머니는 지난 3일간 나담축제 휴가로 인해 일이 많이 밀려서 이사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아침에 인사를 드리고 가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이사하기 30분 전에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같이 있던 언니가 도와줬어요. 바트(몽골 학생)가 이사를 돕기 위해 새로 선택한 차를 몰고 집 앞까지 와서 기다렸어요. (정말 여러가지로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발을 들고 거실로 가서 비닐봉지를 꺼내려고 문을 여는 순간, 만난 엄마! 서로 놀라서 소리를 질렀대요. 어머니는 제가 이미 이사를 갔다고 생각했고, 저도 어머니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머님 얼굴이 좀 이상했어요. 술을 마신 것 같았어요. 평소에 술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요. 간 줄 알았다고 하고, 아직 간 줄(물론 엄마는 모두 몽골어로!) 말하고 있는 중! 엄마가 말을 멈추고 울음을 터뜨리거든요. 나도 울고 같이 있던 언니도 울고. 엄마가 점점 더 심하게 울고 있어요. 오늘 회사에 갔는데 일을 못했어요. 시계만 봤어. 이사갔겠네.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을 받는 일도 많았지만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슬퍼서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어. 어젯밤은 한숨도 못 잤어. 숙박비를 다 갚을테니 그냥 같이 살면 안될까? 다 필요 없어. 그냥 이 집에 살아서는 왜 안 되는가?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안 보는 곳에서 계속 울었다. 나는 딸이 없다. 나는 항상 혼자였다. 그런데 나와 함께 살면서 밤늦게까지 이야기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 행복했다.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일을 시작하면 가끔만 연락이 될 거야. 나는 항상 울 것이다. 요리를 하면서도 사진을 보면서도 울 것이다 울면서 하는 몽골어를 저는 왠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니야 연락도 자주하고 놀러오고 그러잖아. 아무리 위로해도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들 둘에게 남편, 엄마는 서운했나 봐요. 그렇게 30분을 위로하고 떠나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짐을 싣는데 창문 밖에서 엄마가 보고 있었어요. 제가 큰 소리로 집에 도착해서 연락을 드리면 건강하시고 한숨 주무시라고 (물론 몽골어로!) 말씀드렸더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홈스테이는 끝났습니다. 홈스테이가 끝나고 저에게 새로 생긴 것이 3가지 있습니다. 몽골의 엄마 아빠가 생기고 몽골어로 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자기 집이 생겼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어디를 가든 사랑받고 사랑을 줄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사는 한몽기술대 선배들이 와서 힘을 안 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저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집도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큼 좋은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대청소를 했어요. 오늘도 해야 해요. 이사는 정말 힘든 일이에요. 소파 시트도 다 벗겨서 씻었어요. 세탁기를 처음으로 혼자 써봤는데 좀 망설였지만 깨끗이 씻었어요. 세제를 얼마나 넣느냐가 제일 어려워요. 청소 끝나면 사진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집 계약도, 흥정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제가 했습니다. 같이 사는 언니 남편과도 제가 얘기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제가 몽골에 온 지 두 달 됐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몽골어를 잘한다고 항상 칭찬해줘요.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옆에 식품점이 있어서 잼과 빵과 우유를 사먹었어요. 국내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정식으로 한국 해외 봉사단원이 되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해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긴장한 인생의 연속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저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도록 새 삶, 보경이(2006)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면 눈물이 돼 나올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아빠의 메일을 읽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지난 한 해를 통해, 올해 초에 많은 것을 통해 그 꿈에 이끌린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귀한 생각을 주고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기립니다. 아버지 안에서 죽을 것이 죽고 그 죽음으로 새 생명으로 거듭난 그날 밤
센베? 메일이 늦었나요? 생각보다 훈련 일정이 빠듯합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 안 나와요. 어떻게 뱉어야 할지. 우선은 제가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것과 저를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가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제자도 만났어요. 바트가 요즘 전화만 하면 달려와서 도와준대요. 입장이 바뀌어서 요즘 제자한테 몽골어를 배워요. 마르튀스 교회라는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몽골의 후레 대학이라는 곳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저를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월요일부터금요일까지아침9시부터4시반까지몽골과기대라는곳에서한국어학과교수님들에게몽골어를배웁니다. 매일 복습하기도 빠듯해요. 아침에는 몇 번 먹었는데도 자꾸 배탈이 나서 간단하게 우유만 마시고 점심은 학교 식당이나 근처 식당에 가서 마시고 저녁은 아파트 앞에 있는 마켓에 가서 반찬을 사서 넷이 함께 만들어 먹습니다. 제가 고기볶음이랑 파스타, 양배추볶음도 했어요. 먹을 가치가 있어요. 숙소는 시내에 있는 시티 아파트라는 곳인데 좋은 아파트라고 합니다. 내 방, 화장실, 주방도 있어요. 1인 1실입니다. 진짜 혼자 지내는 거죠. 다음에는 사진도 보내겠습니다. 공기가 그렇게 나쁘지도, 사람들은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요. 한국 것이 많아서 낮은 부분이 별로 없어요. 베트남 같기도 하고 중국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유럽 분들의 문화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재미있는 점도 있습니다. 사람은 정말 크고요. 여자와 남자를 막론하고 몸집이 얼마나 큰지 레스토랑에 가면 주눅이 들어요.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백야였습니다. 백야가 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환상적인 건 아니었어요. 다만 10시까지 해가 떠서 한낮 같다는 거. 처음에는 적응도 못하고 시간 개념도 없이 지냈는데 요즘은 백야가 너무 고마워요. 실내 등이 모두 백열등으로 공부하기에는 눈이 피곤하지만 해가 늦게까지 떠 있기 때문에 창문 앞에 책상을 놓고 공부하면 좋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없는 건 우리 가족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 있어요. 가격은 몽골에서 생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물가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어떻게 살까 했는데 몽골 사람들이 먹는 거 먹고 입는 거 입으면 잘 살 것 같아요. 음식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입에 맞습니다. 양고기도 소고기인 줄 알고 먹을 정도예요. 소고기가 정말 쌉니다. 1kg에 2600원! 할머니 생각났어요? 몽골 사람들은 표정이 좀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막상 얘기해보면 친절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농경민족이 상상할 수 없는 유목민족 특유의 자유로운 사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뭔가 통하면 문화 충격도 받지만 아직은 무난합니다. 다음 주에는 집을 구하러 갈 것 같아요. 아! 아침에는 절대 늦잠을 자지 않고 혼자 자주 일어납니다. 입 다물면 다 하는 것 같아요. 그 대신 방은 몽골에 와서도 역시 아수라장입니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덥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때에 왔다고 선배들이 부러워해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가 여기 온 이유를 찾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잘 지내시죠? 아! 아빠 핸드폰 비밀번호가 뭐예요? 국제전화를 잠가둬서 제가 전화를 걸 수가 없네요. 저희 집에서 최대한 비밀번호는 다 눌러봤는데 못 찾았어요. 메일로 보내주세요. 보고 싶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마음은 이미 전해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위치는 다르지만 각자의 장소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거죠? 멋진 2006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연락합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보경이가 센베? 메일이 늦었나요? 생각보다 훈련 일정이 빠듯합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 안 나와요. 어떻게 뱉어야 할지. 우선은 제가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것과 저를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가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제자도 만났어요. 바트가 요즘 전화만 하면 달려와서 도와준대요. 입장이 바뀌어서 요즘 제자한테 몽골어를 배워요. 마르튀스 교회라는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몽골의 후레 대학이라는 곳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저를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월요일부터금요일까지아침9시부터4시반까지몽골과기대라는곳에서한국어학과교수님들에게몽골어를배웁니다. 매일 복습하기도 빠듯해요. 아침에는 몇 번 먹었는데도 자꾸 배탈이 나서 간단하게 우유만 마시고 점심은 학교 식당이나 근처 식당에 가서 마시고 저녁은 아파트 앞에 있는 마켓에 가서 반찬을 사서 넷이 함께 만들어 먹습니다. 제가 고기볶음이랑 파스타, 양배추볶음도 했어요. 먹을 가치가 있어요. 숙소는 시내에 있는 시티 아파트라는 곳인데 좋은 아파트라고 합니다. 내 방, 화장실, 주방도 있어요. 1인 1실입니다. 진짜 혼자 지내는 거죠. 다음에는 사진도 보내겠습니다. 공기가 그렇게 나쁘지도, 사람들은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요. 한국 것이 많아서 낮은 부분이 별로 없어요. 베트남 같기도 하고 중국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유럽 분들의 문화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재미있는 점도 있습니다. 사람은 정말 크고요. 여자와 남자를 막론하고 몸집이 얼마나 큰지 레스토랑에 가면 주눅이 들어요.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백야였습니다. 백야가 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환상적인 건 아니었어요. 다만 10시까지 해가 떠서 한낮 같다는 거. 처음에는 적응도 못하고 시간 개념도 없이 지냈는데 요즘은 백야가 너무 고마워요. 실내 등이 모두 백열등으로 공부하기에는 눈이 피곤하지만 해가 늦게까지 떠 있기 때문에 창문 앞에 책상을 놓고 공부하면 좋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없는 건 우리 가족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 있어요. 가격은 몽골에서 생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물가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어떻게 살까 했는데 몽골 사람들이 먹는 거 먹고 입는 거 입으면 잘 살 것 같아요. 음식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입에 맞습니다. 양고기도 소고기인 줄 알고 먹을 정도예요. 소고기가 정말 쌉니다. 1kg에 2600원! 할머니 생각났어요? 몽골
봄의 속삭임 ‘봄이 속삭이는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른 아침 텅 빈 광화문 거리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자가용 승용차의 굴레에서 벗어나 밖을 내다보며 교보 앞을 지난다. 그래, 어제 떠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병상의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이 자유로움을 소중한지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낭비를 새삼 자책하며 봄나들이를 떠난다. 내가 떠나는 보따리에 교보는 한 줌의 봄 향기를 이렇게 담아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한다. 천안연수원의 아침 첫 강의 시간을 대비해 5시에 일어난 곳이다. 시계를 보며 초조한 길이지만 여유 속에서도 설렘과 함께 떠나는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세종로 사거리-그러니 교보의 그 말은 그만큼 귀중한 것 같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선물(하나님께 기도할 때 너를 가리키는 목소리), 포동아, 회한 속에서도 봄은 이렇게 오는구나. 길가에 연초록 새싹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다. 꽃을 피우는 봄, 희망을 돋우는 봄, 그리고 사랑을 잊지 말라는 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래, 힘차게 봄 속으로 날개를 펼치자! 희망의 날개, 사랑의 날개를(짝짝짝!:당신이 힘들다고 생각해서 아빠가 대신 두드려 주는 박수.) 2007.04.17 봄 아빠가 봄의 속삭임 ‘봄이 속삭이는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른 아침 텅 빈 광화문 거리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자가용 승용차의 굴레에서 벗어나 밖을 내다보며 교보 앞을 지난다. 그래, 어제 떠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병상의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이 자유로움을 소중한지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낭비를 새삼 자책하며 봄나들이를 떠난다. 내가 떠나는 보따리에 교보는 한 줌의 봄 향기를 이렇게 담아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한다. 천안연수원의 아침 첫 강의 시간을 대비해 5시에 일어난 곳이다. 시계를 보며 초조한 길이지만 여유 속에서도 설렘과 함께 떠나는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세종로 사거리-그러니 교보의 그 말은 그만큼 귀중한 것 같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선물(하나님께 기도할 때 너를 가리키는 목소리), 포동아, 회한 속에서도 봄은 이렇게 오는구나. 길가에 연초록 새싹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다. 꽃을 피우는 봄, 희망을 돋우는 봄, 그리고 사랑을 잊지 말라는 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래, 힘차게 봄 속으로 날개를 펼치자! 희망의 날개, 사랑의 날개를 (짝짝짝! : 네가 힘들다고 생각해서 아빠가 대신 두드려주는 박수.) 2007.04.17 봄 아빠가
몽골의 봄봄봄. 봄. 기다렸다는 듯이 때맞춰 돋아나는 여린 잎과 꽃. 바람마저 향기롭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화려하게 시작되는 꽃의 향연을 지켜보며. 나도 그 틈에 끼여 왜 새로워지지 않는지,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었다. 몽골에서도 봄을 찾았는데. 꽃 없는 봄. 사랑스러운 새싹도 없는 몽골의 봄, 봄, 봄, 꽃을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은 뜨거워지고 바람도 부드럽지만 몽골의 봄에는 꽃이 없습니다. 초여름이 되면 넓은 초원에 수없이 들꽃이 필 것입니다. 하지만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고 싶어요. 한국인이잖아요 이른 아침 내가 타고 다니던 그 버스를 타고 내가 바라본 그 창문을 통해 내가 바라본 그 거리를 바라보며 오늘의 소중함과 자유로움을 느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 얼굴은 가득, 봄의 햇살이 비추었을 것이다. 창문이라도 열면 차갑지만 해가 뜨지 않는 봄바람을 맞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봄에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 문자로 아버지에게 그렇게 봄을 알리려고 했던 저였는데요. 지금은 아버지를 통해서 봄을 만났네요. 다음주에는 스피치대회도 끝나고, 또 5월 중순쯤에는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6월 중순에는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에 있는 지방의 대학으로 한 달 동안 실습을 가는데 그때까지는 제가 준비를 시켜야 할 것 같아요. 7월에는 전북대학교에서 10일간 자원봉사하러 온다고 해서 준비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말뿐인 현장 지원 사업(프로젝트) 계획도 빨리 세우고 진행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몽골에서의 1년을 보내고 남은 1년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 봄에는 귀국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제가 무엇을 했는지, 여기에 왜 왔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시간도 있는데 왜 마음만 바쁜거죠? 집안일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혼자 신김치 넣어서 청국장도 해 먹고 김치볶음밥도 해 먹고 남은 밥은 냉장고에 보관하고 마늘이랑 파는 냉동실에 얼려놓고 빨래는 모아서 한꺼번에 하고 물은 미리 만들어서 식혀놓고 청소도 안 시켜도 하고 정리도 하고 전화비도 내고 전기세 걱정도 하면서 절전하고. 이제 집안일을 하는 것은 일도 아닌데 날도 길어지고 8시 30분이 되어야 어둑어둑해지는데 왜 또 시간에 쫓겨 사는 느낌일까요. 하루를 34시간처럼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 벗어나 여유도 누리면서 나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느끼며 살아보자고 했는데, 뭐든지 만들어서 34시간처럼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아요. 아버지는 여기서 제가 하루 종일 어떻게 사는지 제일 궁금하시죠? 나름대로 잘 살려고 노력하면서 3일 간격으로 새로운 마음가짐과 계획을 세우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꿈에서 엄마와 아빠, 곰순이,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딸꾹질을 하고 있었어요. 당분간은 할머니만 뵐 것 같아요. 아직도 단발머리 할머니는 낯설거든요. 한국에 휴가를 갔나보네요. 그런데 하루 만에 다시 몽골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이것저것 해야 하는 꿈이었어요. 그래도 우리 집에 있던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정말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오랜만에 사연 드립니다. 그래서 내용이 두서없네요. 여기는 여름과 함께 갑자기 손바닥만한 나뭇잎이 나올 것 같아요.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봄을 필사적으로 잡아보고 저도 봄이 들려주는 희망의 속삭임을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향 언니도, 은이도, 호야 엄마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곰순이도!! (많네요…-_-;) 새로운 봄날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짝짝짝! 이건 아빠가 대신 때려준 박수예요. 저는 피곤해서 아직 못 쳤거든요. 사랑합니다! 얘들아! 2007년 봄-몽골에서 한국국제협력단 26기 신보경 드림. 몽골의 봄봄봄. 봄. 기다렸다는 듯이 때맞춰 돋아나는 여린 잎과 꽃. 바람마저 향기롭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화려하게 시작되는 꽃의 향연을 지켜보며. 나도 그 틈에 끼여 왜 새로워지지 않는지,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었다. 몽골에서도 봄을 찾았는데. 꽃 없는 봄. 사랑스러운 새싹도 없는 몽골의 봄, 봄, 봄, 꽃을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은 뜨거워지고 바람도 부드럽지만 몽골의 봄에는 꽃이 없습니다. 초여름이 되면 넓은 초원에 수없이 들꽃이 필 것입니다. 하지만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고 싶어요. 한국인이잖아요 이른 아침 내가 타고 다니던 그 버스를 타고 내가 바라본 그 창문을 통해 내가 바라본 그 거리를 바라보며 오늘의 소중함과 자유로움을 느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 얼굴은 가득, 봄의 햇살이 비추었을 것이다. 창문이라도 열면 차갑지만 해가 뜨지 않는 봄바람을 맞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봄에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 문자로 아버지에게 그렇게 봄을 알리려고 했던 저였는데요. 지금은 아버지를 통해서 봄을 만났네요. 다음주에는 스피치대회도 끝나고, 또 5월 중순쯤에는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6월 중순에는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에 있는 지방의 대학으로 한 달 동안 실습을 가는데 그때까지는 제가 준비를 시켜야 할 것 같아요. 7월에는 전북대학교에서 10일간 자원봉사하러 온다고 해서 준비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말뿐인 현장 지원 사업(프로젝트) 계획도 빨리 세우고 진행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몽골에서의 1년을 보내고 남은 1년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 봄에는 귀국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제가 무엇을 했는지, 여기에 왜 왔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시간도 있는데 왜 마음만 바쁜거죠? 집안일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혼자 신김치 넣어서 청국장도 해 먹고 김치볶음밥도 해 먹고 남은 밥은 냉장고에 보관하고 마늘이랑 파는 냉동실에 얼려놓고 빨래는 모아서 한꺼번에 하고 물은 미리 만들어서 식혀놓고 청소도 안 시켜도 하고 정리도 하고 전화비도 내고 전기세 걱정도 하면서 절전하고. 이제 집안일을 하는 것은 일도 아닌데 날도 길어지고 8시 30분이 되어야 어둑어둑해지는데 왜 또 시간에 쫓겨 사는 느낌일까요. 하루를 34시간처럼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 벗어나 여유도 누리면서 나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느끼며 살아보자고 했지만 무엇이든 만들어 34시간처럼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보경아, 보고 싶어! 찢기듯 외치던 매미가 달려 있던 노란 단풍이 쌓여가고, 웅장했던 검푸른 백운대도 서서히 브릿지를 들어설 무렵 황량한 사막에서 고운님이 온다고 한다. 무슨 날을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는지, 지금은 눈이 멀고 가을 햇살이 졸린 할머니처럼 나도 언젠가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마 그보다 더한 것 같다. 태풍이 몰고 오는 폭우 속에서도 몽골 아줌마는 그 온화한 미소로 호야랑, 은랑,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 아빠로 헤어져 더 가까웠던 언니에게 달려간다. 보경이 보고싶어! 파파요리(2007) 보경아, 보고 싶어! 찢기듯 외치던 매미가 달려 있던 노란 단풍이 쌓여가고, 웅장했던 검푸른 백운대도 서서히 브릿지를 들어설 무렵 황량한 사막에서 고운님이 온다고 한다. 무슨 날을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는지, 지금은 눈이 멀고 가을 햇살이 졸린 할머니처럼 나도 언젠가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마 그보다 더한 것 같다. 태풍이 몰고 오는 폭우 속에서도 몽골 아줌마는 그 온화한 미소로 호야랑, 은랑,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 아빠로 헤어져 더 가까웠던 언니에게 달려간다. 보경이 보고싶어! 파파요리(2007)
곰순이의 이야기 늦가을 햇살이 베란다 화분 사이로 비집고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낮에는 곰순이가 그립다. 이럴 때면 바닥에 엎드려 곤히 잠든 곰순이의 콧날은 땀인지 윤기가 촉촉이 배어 있었다. 곰순이가 낮잠을 자던 거실에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멍게가 흔들림을 타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곰순이가 떠난 지 오래된 것 같다. 곰순이는 멍게가 태어나 조리원에서 외가로 오기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났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셋째 딸 보경이는 언니와 동생과 함께 수유동에서 태어나 백운대를 보며 자랐다.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삼각산 자락에서 자란 탓인지 서울 태생답지 않은 정감도 풍부했다. 한참 후에도 들꽃을 부른 시로 마로니에 백일장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보경이 백운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수중학교에 배정되는 새 학기에 우리는 목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의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새 동네 목동의 보경이는 몹시 괴로워했다. 낯선 동네 친구 하나 없는 새 학교에, 그보다 더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백운대, 도봉산 대신 핀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숲은 지금 생각해도 사춘기 보경에겐 너무 가혹한 고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친구와 태릉까지 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멀리 보이는 인수봉을 바라보며 그 먼 길을 걸어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백운대와 인수봉은 뒷산이 아니라 보경의 고향이며, 어디를 가든 내려다보며 함께하는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보경이는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다. 동물을 특히 좋아해서 국민학교 저학년 새 학기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사온 적이 있었다. 깨를 올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여다보았지만 며칠 안 돼 죽고 말았다. 이때 너무나 슬퍼하며 부산에서 전화를 건 나는 그만 집안에서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얼마나 놀랐는지. 물론 나와 엄마는 강아지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냄새도 나고 털도 날아가고 이익이 되는 일 하나 없다고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는 막내 이모가 보경이 편을 들어 결국 우리가 지고 말았다. 강아지가 보경이의 귀여운 친구가 되어 마음을 그곳에 붙일 수 있다는 이모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며칠 뒤 이모가 데려온 강아지는 삽살개 같은 요크셔 테리어라고 했다. 생후 1년이 조금 넘었다고 하지만 먼저 있던 집에서 별로 예뻐하지 않고 자란 탓인지 눈치 보는 게 그리 귀엽지 않았다. 이름도 곰순이가 뭔가 다른 강아지는 세련된 이름도 많던데. 져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가둘 수밖에 없어서 울타리 같은 개집을 사서 베란다에도 설치해 보고 거실 한쪽에도 설치해 놓았는데 다 적당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변을 처리하는 게 문제였는데, 그보다 이놈이 그 울타리 안에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한집안이 되었다. 다행히 영리해서 알려준 대로 화장실에 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중학교 1학년인 보경이와 중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 고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인 은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서로 곰순이를 안고 뒹군다. 차츰 생기가 돌았고, 제법 장난기도 부리며 자연스럽게 우리 집 여덟 번째 식구가 됐다. 목동에서 8년 동안 살았다. 한번은 오랜만에 막내이모가 왔다. 곰순이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나도 한동안 함께했던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을 모두 간직한 그의 생각 속에 우리는 무엇일까. 곰순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할머니는 큰 집에 계셨는데, 얼마 후 오게 되었다. 곰순이는 할머니보다 먼저 우리 집에 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내내 곰순이는 할머니를 특히 외지인 취급했다. 짖기도 하고 때로는 쫓아가 양말을 물어뜯기도 했다. 그래도 모두 학교로 직장으로 교회에 나가니 할머니와 곰순이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서로 이야기도 하고 마음 약한 할머니는 뭘 먹어도 곰순이에게도 꼭 나눠주곤 했다. 안 줄 것을 줘서 배탈이 나면 그때마다 온 가족에게 할머니가 원망을 사면서도 여전히 혼자 먹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원래 시골 태생이다. 새댁 때부터 밭일을 했는데 깻잎에 붙은 벌레(무슨 나방이 애벌레인지 너무 커서 징그러웠다)를 잡아도 죽이지 못하고 긴 나무젓가락으로 주워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낼 정도로 마음이 약했다. 가끔 손님들이 와서 닭을 잡아야 할 때면 그것을 죽이지 못하고 목에 돌을 눌러 놓고 다른 데 가서 죽었나 싶어 와 보곤 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부인들에게 항의를 들었다. 음식 찌꺼기를 비둘기에게 주었기 때문에 비둘기들이 여러 번 모여들어 여기저기 똥을 싸고 더럽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미안해 하면서도 속으로는 투정을 부렸다. 아니, 안 먹고 버리는 음식 찌꺼기를 주면 얼마나 잘 먹는데 그걸 안 시키냐고. 할머니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쓰레기장 쪽으로 가면 멀리서 보던 비둘기들이 이미 알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하치조 옆의 나무 그늘 아래는 비둘기들과의 무언의 약속 장소였다. 구구하면서 맛있게 먹는 비둘기들을 보며 할머니는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래서 할머니는 밖에 함부로 버린 음식 찌꺼기까지 틈틈이 가져와 며느리 몰래 베란다에 숨겨놓곤 했다. 이것이 온전할 리 없다. 결국 냄새가 나서 벌레에 물리면 며느리에게도 혼날 일이 없다. 어디서 모여드는지 비둘기떼는 더욱 많아지고, 앞뒤로 날아오는 비둘기에 휩싸인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닭이 주었던 아련한 고향 마당, 그 추억 속에 잠기는 것이다. 아파트 부녀자들의 항의는 더욱 거세져 마침내 반상회에서 결의를 하기에 이른다. 결국 할머니는 밖에 나갈 수 없다. 비둘기들이 날아오는 게 미안해서다. 아파트 부녀자들에게도 미안하지만, 그보다 할머니를 보고 날아와도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곰순이가 아무리 친해도 보경이와 은이, 그리고 엄마는 먹는 동안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곰순이는 우리 가족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비교해놨다. 할머니와 내가 식사할때는 하루 곰순이의 이야기 늦가을 햇살이 베란다 화분 사이로 비집고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낮에는 곰순이가 그립다. 이럴 때면 바닥에 엎드려 곤히 잠든 곰순이의 콧날은 땀인지 윤기가 촉촉이 배어 있었다. 곰순이가 낮잠을 자던 거실에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멍게가 흔들림을 타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곰순이가 떠난 지 오래된 것 같다. 곰순이는 멍게가 태어나 조리원에서 외가로 오기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났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셋째 딸 보경이는 언니와 동생과 함께 수유동에서 태어나 백운대를 보며 자랐다. 부담없이 산책할 수 있다
몽골에 나타난 곰순이 비밀처럼 마음속에 깨끗이 숨겨두고 아무도 먼저 꺼내지 않은 곰순언의 이야기를 낙엽이 모두 버린 초겨울 밤, 아버지가 먼저 조심스럽게 풀어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 이렇게 빛이 바래버렸을까. 곰순언의 이야기는 흐릿하고 빛바랜 필름 사진처럼 멀다. 곰순언 얘기를 하려면 신 씨의 10여 년 생활을 파헤쳐야 할 정도. 그만큼 그 작은 동물은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아. 아니, ‘우리’였나 봐. 곰순이는 어느 날 우리 곁에 왔다가 어느 날 떠났다. 젓가락으로 집어 다른 세계로 옮긴 듯 흔적도 없고 말도 없이 떠났다. 시간은 계속 흘러 신 씨 가족은 여전히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아멘을 하고, 아버지는 초코과자를 먹고, 동향인 언니는 퇴근하고, 할머니는 고구마를 구워 먹는데요. 곰순이는 온데간데없다. 곰순이는 그렇게 집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신 씨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집안 구석구석에서 곰순이를 본다. 식탁 아래에서도, 현관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아빠의 의자 방석 위에서도, 이제 냄새도 없고, 다리도 아프지 않고, 암 덩어리도 없는, 노인성 색소반점 곰순이를 만난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리움과 눈물로 곰순이를 맞이할 뿐이다. 곰순이는 우리에게 믿음직한 친구였다. 말로는 우리 ‘아기’했지만 사실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위로해준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몽골에 간 셋째 아이를 기다려 주고 우리 집 막내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몽골 언니의 꿈에 방문하기도 했다. 몇 주 전 곰순이는 몽골에 직접 와서 작별 인사를 해줬다. 자기 아프기 전에 갔다고, 편하게 갔다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정말 간절했고, 그렇게 우리를 위로해줬다. 곰순이의 이야기는 아직 우리에게 아픈 이야기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충격에 빠진 신 씨 가족의 마음 속에 아직도 숨겨져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낸 그 친구에게 모두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주는 그날이면 아마도 곰순이가 있는 그 자리에는 곰순이가 발바닥만큼 앙증맞은 들꽃들이 모여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을 것이다. 온몸에서 열기처럼 냄새를 뿜어낸 이 빠진 할머니. 초콜릿이랑 콩이랑 고구마랑 제일 좋아했던 탈모. 집안을 호령하며 밤새 코를 골고 아저씨보다 더 크게 트림을 하던 너무 귀엽고 예뻤던 곰순이. 아프지 않고 떠나줘서 정말 고마워. 2007.11.21 곰순이 언니 보경몽골에 나타난 곰순이 비밀처럼 마음속에 깨끗이 숨겨두고, 아무도 먼저 꺼내지 않은 곰순언의 이야기를 낙엽이 모두 버린 초겨울 밤, 아버지가 먼저 조심스럽게 풀어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 이렇게 빛이 바래버렸을까. 곰순언의 이야기는 흐릿하고 빛바랜 필름 사진처럼 멀다. 곰순언 얘기를 하려면 신 씨의 10여 년 생활을 파헤쳐야 할 정도. 그만큼 그 작은 동물은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아. 아니, ‘우리’였나 봐. 곰순이는 어느 날 우리 곁에 왔다가 어느 날 떠났다. 젓가락으로 집어 다른 세계로 옮긴 듯 흔적도 없고 말도 없이 떠났다. 시간은 계속 흘러 신 씨 가족은 여전히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아멘을 하고, 아버지는 초코과자를 먹고, 동향인 언니는 퇴근하고, 할머니는 고구마를 구워 먹는데요. 곰순이는 온데간데없다. 곰순이는 그렇게 집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신 씨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집안 구석구석에서 곰순이를 본다. 식탁 아래에서도, 현관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아빠의 의자 방석 위에서도, 이제 냄새도 없고, 다리도 아프지 않고, 암 덩어리도 없는, 노인성 색소반점 곰순이를 만난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리움과 눈물로 곰순이를 맞이할 뿐이다. 곰순이는 우리에게 믿음직한 친구였다. 말로는 우리 ‘아기’했지만 사실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위로해준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몽골에 간 셋째 아이를 기다려 주고 우리 집 막내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몽골 언니의 꿈에 방문하기도 했다. 몇 주 전 곰순이는 몽골에 직접 와서 작별 인사를 해줬다. 자기 아프기 전에 갔다고, 편하게 갔다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정말 간절했고, 그렇게 우리를 위로해줬다. 곰순이의 이야기는 아직 우리에게 아픈 이야기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충격에 빠진 신 씨 가족의 마음 속에 아직도 숨겨져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낸 그 친구에게 모두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주는 그날이면 아마도 곰순이가 있는 그 자리에는 곰순이가 발바닥만큼 앙증맞은 들꽃들이 모여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을 것이다. 온몸에서 열기처럼 냄새를 뿜어낸 이 빠진 할머니. 초콜릿이랑 콩이랑 고구마랑 제일 좋아했던 탈모. 집안을 호령하며 밤새 코를 골고 아저씨보다 더 크게 트림을 하던 너무 귀엽고 예뻤던 곰순이. 아프지 않고 떠나줘서 정말 고마워. 2007.11.21 곰순이 언니 보경
내일이여 오라 엄마 나를 빨리 깨워주세요 모든 새해 중 내일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거예요 35만 대가 빠졌다거나 차들이 텅 빈 광화문 거리를 달리다 교보빌딩을 힐끗 봤다. 교보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 아마 그 안에 많은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내일의 희망을 안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걸린 현수막 문구에 설레고 있다. 내일이 우리 설날이고 오늘은 까치 설날인데 보경이는 뭐 할까? 새해가 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2007년’이라고 써 놓았다가 다시 지우고 써야 하는 2월 초, 우리는 또 하나의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미칠 것 같은 새해 인사와 지난번 일은 했지만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하는 설날입니다. 얼마짜리 차가 빠져나간다고 이렇게 도심이 텅 비다니, 차도 나왔지만 사람들도 나가고, 직장과 사업으로 아등바등하던 그 처절한 생존 싸움도 잠시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처럼 여유롭고 넉넉한 것을 그만큼 어렵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새해는 오늘까지 내가 배우고 연습해 온 모든 것을 거울삼아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빨리 내일이 되어와. 그럼 멋진 나의 행복을 이뤄보자. 검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받으며 나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늦게까지 자면 안 되니까 “엄마, 저 빨리 깨워주세요.” 모든 새해 중 내일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거예요.” 호진이 우리 집에 가서 텅 빈 외갓집 엄마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웅이는 시차 때문에 아직 망설이다가 잠이 들고, 할머니는 아까부터 자는데도 가끔 잠꼬대가 흐르고, 동향이는 왜 찹쌀호떡 재료를 사서 냄새를 풍기는 걸까. (2008) 내일이여 오라 엄마 나를 빨리 깨워주세요 모든 새해 중 내일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거예요 35만 대가 빠졌다거나 차들이 텅 빈 광화문 거리를 달리다 교보빌딩을 힐끗 봤다. 교보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 아마 그 안에 많은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내일의 희망을 안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걸린 현수막 문구에 설레고 있다. 내일이 우리 설날이고 오늘은 까치 설날인데 보경이는 뭐 할까? 새해가 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2007년’이라고 써 놓았다가 다시 지우고 써야 하는 2월 초, 우리는 또 하나의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미칠 것 같은 새해 인사와 지난번 일은 했지만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하는 설날입니다. 얼마짜리 차가 빠져나간다고 이렇게 도심이 텅 비다니, 차도 나왔지만 사람들도 나가고, 직장과 사업으로 아등바등하던 그 처절한 생존 싸움도 잠시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처럼 여유롭고 넉넉한 것을 그만큼 어렵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새해는 오늘까지 내가 배우고 연습해 온 모든 것을 거울삼아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빨리 내일이 되어와. 그럼 멋진 나의 행복을 이뤄보자. 검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받으며 나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늦게까지 자면 안 되니까 “엄마, 저 빨리 깨워주세요.” 모든 새해 중 내일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거예요.” 호진이 우리 집에 가서 텅 빈 외갓집 엄마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웅이는 시차 때문에 아직 망설이다가 잠이 들고, 할머니는 아까부터 자는데도 가끔 잠꼬대가 흐르고, 동향이는 왜 찹쌀호떡 재료를 사서 냄새를 풍기는 걸까. (2008)
5월은 ‘사랑아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기의 모든 것을 위해, 건배!」교보의 5월은 벌써 건배를 준비했다. 고운님이 오신다고 꽃과 신록을 한 아름 묶어놓고 소쩍새 꽃잎을 띄우고 날짜를 세는구나. 오늘이 열흘이면 이제 열흘밖에 안 남았네! 열흘이 열 달인가 봐요. 군대처럼 2년을 잘 견뎌낸 보경이가 최고예요. “그럼 장하다.” 앉아도 서도 보경이 귀국 이야기다. 남은 날이 더 보람차게, 그리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밥 잘 먹는 과제를 끝까지 해내길! “보경과 함께한 주님, 그의 손을 빌려주신 주님의 사랑과 그의 발걸음으로 뿌린 신앙의 씨앗이 잘 자라 알찬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어느덧 밤 1시가 지났으니 이제 9일이면 오겠지,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쩍새의 목소리. 몽골 아줌마가 오면 호진이를 얼마나 예뻐할까? 잠들지 않는 호진과 에미 할머니가 웃음꽃을 피운다. 공항에서 오는 날 넘실대는 한강물과 잘 어우러진 신록 사이로 신나게 달려보자(보경인, 다시 잠들겠지)(2008) 5월은 ‘사랑아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기의 모든 것을 위해, 건배!」교보의 5월은 벌써 건배를 준비했다. 고운님이 오신다고 꽃과 신록을 한 아름 묶어놓고 소쩍새 꽃잎을 띄우고 날짜를 세는구나. 오늘이 열흘이면 이제 열흘밖에 안 남았네! 열흘이 열 달인가 봐요. 군대처럼 2년을 잘 견뎌낸 보경이가 최고예요. “그럼 장하다.” 앉아도 서도 보경이 귀국 이야기다. 남은 날이 더 보람차게, 그리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밥 잘 먹는 과제를 끝까지 해내길! “보경과 함께한 주님, 그의 손을 빌려주신 주님의 사랑과 그의 발걸음으로 뿌린 신앙의 씨앗이 잘 자라 알찬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어느덧 밤 1시가 지났으니 이제 9일이면 오겠지,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쩍새의 목소리. 몽골 아줌마가 오면 호진이를 얼마나 예뻐할까? 잠들지 않는 호진과 에미 할머니가 웃음꽃을 피운다. 공항에서 오는 날 넘실대는 한강물과 잘 어우러진 신록 사이로 신나게 달려보자(보경인, 다시 잠들겠지)(2008)
널 안 볼 때, 아빠(2001)를 안 볼 때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당신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나는 나와도 할 말이 없었어. 네가 고개를 숙이고 나간 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땅을 보고도 아무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보경이 많이 울었겠다. ‘아빠, 네가 늦게 온 것에 화가 났고 지갑을 잃어버린 것에 화가 났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늦게 오는 걸 보면 곧 아빠 품을 떠날 텐데 내 지갑 하나 못 구하는 막내한테 어이가 없어?…’ 생각하니 화도 나고 걱정도 됐다는 것이다. 보경아, 날갯짓하는 새끼 조롱이 같은 네가 예쁜 네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 전에 지갑도 잘 챙겨서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마음껏 고민하면서 한 살 정도 더 크길 바랐다고 한다. 네가 울렁거렸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맞아, 이렇게 우리는 또 한 살 더 먹고 연륜이 하나 더 늘어나는구나. 비바람도 가르고 푸른 하늘을 오르려면 더 힘을 기르자. 널 안 볼 때, 아빠(2001)를 안 볼 때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당신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나는 나와도 할 말이 없었어. 네가 고개를 숙이고 나간 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땅을 보고도 아무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보경이 많이 울었겠다. ‘아빠, 네가 늦게 온 것에 화가 났고 지갑을 잃어버린 것에 화가 났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늦게 오는 걸 보면 곧 아빠 품을 떠날 텐데 내 지갑 하나 못 구하는 막내한테 어이가 없어?…’ 생각하니 화도 나고 걱정도 됐다는 것이다. 보경아, 날갯짓하는 새끼 조롱이 같은 네가 예쁜 네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 전에 지갑도 잘 챙겨서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마음껏 고민하면서 한 살 정도 더 크길 바랐다고 한다. 네가 울렁거렸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맞아, 이렇게 우리는 또 한 살 더 먹고 연륜이 하나 더 늘어나는구나. 비바람도 가르고 푸른 하늘을 오르려면 더 힘을 기르자.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지금도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을 하는 너희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쁜 마음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불쌍하지만 이 언니는 너희들이 누구보다 부럽구나. 지금 당장은 힘든 것 같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동향은 종반의 속도를 더 높여(고지가 보이지 않는가?)? 보경은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걷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너희들이 없어서 저축은 지루하지만 좀 참을 수밖에 없어. 시험끝나고 언니랑 재밌게 놀자. 그럼 Bye. 사랑하는 언니보다 (1998)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지금도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을 하고 있는 너희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쁜 마음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불쌍하지만 이 언니는 너희들이 누구보다 부럽구나. 지금 당장은 힘든 것 같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동향은 종반의 속도를 더 높여(고지가 보이지 않는가?)? 보경은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걷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너희들이 없어서 저축은 지루하지만 좀 참을 수밖에 없어. 시험끝나고 언니랑 재밌게 놀자. 그럼 Bye. 사랑하는 언니로부터 (1998)
동글 은솔 외할아버지(2011)의 어머니가 말하기 전에 아장아장 산책을 나온 북한의 찬바람에 등을 감싸 안고 따뜻하게 감싸안으면 할아버지의 눈에는 하얀 눈꽃이 피어난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진주가 될 때마다 새싹마다 기쁨이 맺힌다. 흰구름목에감긴백운대아래솔잎에쌓인눈꽃이은봉오리가되고동그랗게굴려온은소나무가되면진주처럼보석처럼찬란하게자라하나님도즐길수있는귀중한일꾼이될것이다 동글 은솔 외할아버지(2011)의 어머니가 말하기 전에 아장아장 산책을 나온 북한의 찬바람에 등을 감싸 안고 따뜻하게 감싸안으면 할아버지의 눈에는 하얀 눈꽃이 피어난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진주가 될 때마다 새싹마다 기쁨이 맺힌다. 흰구름목에감긴백운대아래솔잎에쌓인눈꽃이은봉오리가되고동그랗게굴려온은소나무가되면진주처럼보석처럼찬란하게자라하나님도즐길수있는귀중한일꾼이될것이다
레바논에 보낸 겨울 편지 ‘눈과 얼음 틈을 뚫고 가장 먼저 밀어올리는 들꽃 그것이 너였으면 좋겠다'(교보외 벽걸이 좋은 글로)한 겨울 강추위가 어느 해보다 매섭다. 간혹 설마도 날아가고 앙상한 가지를 스치는데 가지 마디마다 움켜쥔 주먹처럼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눈이 녹으면 어느새 저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그 싹보다 먼저 개선 귀국할 것이고, 길지 않은 6개월이 짧지 않은 채 그래도 다 가느냐. 이제 딱 한 달 남았나? 그동안 동향이 태어난 임산부가 됐고. 정훈은 먼 길마다가 아니라 동향이 깨지지 않도록 조용히 새벽기도를 한다고 한다. ‘도토리’가 잘 자라길 기도하겠지(?태명!) 큰 언덕보다는 작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임을 명심하고 매사에 주의. 조심하고··· 추진 : 단장님도 평안하시기를 믿으며, 복귀를 앞두고 더욱 평안과 강건하기를 기원한다. 아빠가(2011) 레바논에 보낸 겨울 편지 ‘눈과 얼음 틈을 뚫고 가장 먼저 밀어올리는 들꽃 그것이 너였으면 좋겠다'(교보외 벽걸이 좋은 글로)한 겨울 강추위가 어느 해보다 매섭다. 간혹 설마도 날아가고 앙상한 가지를 스치는데 가지 마디마다 움켜쥔 주먹처럼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눈이 녹으면 어느새 저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그 싹보다 먼저 개선 귀국할 것이고, 길지 않은 6개월이 짧지 않은 채 그래도 다 가느냐. 이제 딱 한 달 남았나? 그동안 동향이 태어난 임산부가 됐고. 정훈은 먼 길마다가 아니라 동향이 깨지지 않도록 조용히 새벽기도를 한다고 한다. ‘도토리’가 잘 자라길 기도하겠지(?태명!) 큰 언덕보다는 작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임을 명심하고 매사에 주의. 조심하고··· 추진 : 단장님도 평안하시기를 믿으며, 복귀를 앞두고 더욱 평안과 강건하기를 기원한다. 아빠가(2011)
부산 십계 일. 일찍 일어나 영육의 건강을 지키다. 하루의 만남도, 마지막 만남도 주를 이룬다. 2. 아침은 거르지 말고 식사 자세는 바로 바르게 한다. 약속은 오찬으로 하고 저녁 운을 거르지 않는다. 3. 일과 중에도 인품의 향기로 주위를 적신다. 인격은 그가 가진 위보다 더 높아야 한다. 4. SNS를 가까이 하지 않고 시사에 균형을 가진다. 관중이 마술에 속는 순간에도 마술사는 돈벌이를 하고 좌파 히스테리, 우파 오만의 내면에는 익의 명분 뒤에 사익이 숨겨져 있다. 5. 족가 밖에는 자신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6.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높은 사람’이라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다. 7. 입은 하나예요, 귀는 두 개야. 더 들을게. 8. 판단력이 나이가 들수록 고집은 더 커진다. 정답은 없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9.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 10. ( ) 부산 십계 일. 일찍 일어나 영육의 건강을 지키다. 하루의 만남도, 마지막 만남도 주를 이룬다. 2. 아침은 거르지 말고 식사 자세는 바로 바르게 한다. 약속은 오찬으로 하고 저녁 운을 거르지 않는다. 3. 일과 중에도 인품의 향기로 주위를 적신다. 인격은 그가 가진 위보다 더 높아야 한다. 4. SNS를 가까이 하지 않고 시사에 균형을 가진다. 관중이 마술에 속는 순간에도 마술사는 돈벌이를 하고 좌파 히스테리, 우파 오만의 내면에는 익의 명분 뒤에 사익이 숨겨져 있다. 5. 족가 밖에는 자신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6.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높은 사람’이라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다. 7. 입은 하나예요, 귀는 두 개야. 더 들을게. 8. 판단력이 나이가 들수록 고집은 더 커진다. 정답은 없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9.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 10. ( )
예단을 받고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아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채워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착하고 올곧게 자랐더라도 세상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려면 많은 도음이 필요한 막내 동운에게 아름답고 소중하게 키운 따님을 배우자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떻게 압니까, 따님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맞이해 주세요. 자녀의 결혼이라는 것은 매번 새롭고 간소하게 한다고 하면서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과분한 예단까지 보내주셔서 감사에 앞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남은 일정과 미래의 새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도우시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부족한 답례를 너그럽게 받아서 기쁜 축제날 감사한 마음으로 뵙겠습니다. 12월28일 동은 엄마가 예단을 받고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아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채워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착하고 올곧게 자랐더라도 세상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려면 많은 도음이 필요한 막내 동운에게 아름답고 소중하게 키운 따님을 배우자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떻게 압니까, 따님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맞이해 주세요. 자녀의 결혼이라는 것은 매번 새롭고 간소하게 한다고 하면서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과분한 예단까지 보내주셔서 감사에 앞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남은 일정과 미래의 새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도우시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부족한 답례를 너그럽게 받아서 기쁜 축제날 감사한 마음으로 뵙겠습니다. 12월28일 동은 엄마가
사랑스러운 며느리 아기에게 결혼식 먼 여행, 몸과 마음이 지치지? 마치 그저께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선수처럼 편안한 자유로움도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 한식당이 된게 고맙네. 모두가 부러워하는 신랑이자 믿음의 집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갖추지는 못했다. 아니, 부족하고 미흡한 게 훨씬 많은 우리다. 서서히 익혀가는 듯한 소란스럽다기보다는 조용히 내면을 추구해 온 것이 가풍이라면 가풍이다. 벽에 걸어놓은 휘호 儉이불루처럼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좋다고 가르쳐 왔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자는 의미가 좋아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 온 명귀이다. 바로 강호의 온조왕비에게 세운 궁실을 가리켜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기술한 내용인데, 백제의 정취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도 충청도 태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너희 세대에게는 새로운 가치관도 필요할 거야. 하지만 혁신 없는 전통은 사라진다고 했지만 전통 없는 혁신은 실패한다는 말도 있으니 잘 명심하기 바란다. 먼저 살아온 인생 선배에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부 사이에는 땀도 눈물도 서로의 것을 먼저 씻어낸다고 한다. 나의 눈물, 내가 씻고 당신의 땀, 당신이 씻으면 남이고 내 것만 먼저 씻으라고 하면 누구의 땀도 씻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키워나가자! 이제 신 씨 집안의 주인은 바로 우리의 윤희, 사랑스러운 새 며느리라고 한다. 부족한 것은 주님께 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아름답게 이루자! 2014,2,22 媤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며느리 아기에게 결혼식 먼 여행, 몸과 마음이 지치지? 마치 그저께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선수처럼 편안한 자유로움도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 한식당이 된게 고맙네. 모두가 부러워하는 신랑이자 믿음의 집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갖추지는 못했다. 아니, 부족하고 미흡한 게 훨씬 많은 우리다. 서서히 익혀가는 듯한 소란스럽다기보다는 조용히 내면을 추구해 온 것이 가풍이라면 가풍이다. 벽에 걸어놓은 휘호 儉이불루처럼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좋다고 가르쳐 왔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자는 의미가 좋아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 온 명귀이다. 바로 강호의 온조왕비에게 세운 궁실을 가리켜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기술한 내용인데, 백제의 정취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도 충청도 태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너희 세대에게는 새로운 가치관도 필요할 거야. 하지만 혁신 없는 전통은 사라진다고 했지만 전통 없는 혁신은 실패한다는 말도 있으니 잘 명심하기 바란다. 먼저 살아온 인생 선배에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부 사이에는 땀도 눈물도 서로의 것을 먼저 씻어낸다고 한다. 나의 눈물, 내가 씻고 당신의 땀, 당신이 씻으면 남이고 내 것만 먼저 씻으라고 하면 누구의 땀도 씻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키워나가자! 이제 신 씨 집안의 주인은 바로 우리의 윤희, 사랑스러운 새 며느리라고 한다. 부족한 것은 주님께 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아름답게 이루자! 2014,2,22 媤 아버지가
까미노 이야기 동운(2014)은 어떤 계기였을까. 신기하게도 그 부분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한 조각의 글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셋째 누나가 “인생이란 없다”고 외친 동생에게 떠나라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을 선물한 게 시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길지만 지난한 시험 중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연수원 4학기 시험을 앞두고 나는 스페인에 있다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매료되었다. 산티아고는 야곱의 스페인식 이름이고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야곱길. 야곱이 걸었던 전도의 여정.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에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인터넷을 찾아다니며 여정을 준비했고, 그 희망을 하루하루 버티고 마지막 시험을 봤다. 그리고 연수원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스페인을 향해 출발했다. 30일 동안 700km를 걸었다.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야. 다만 아래는 내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를 가장 투명하게 대면한 빛나던 순간. 그 기억의 단상이다. 1.12kg 정도의 무게를 합친 배낭 하나를 메고 떠났다.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짐은 얼마나 될까? 불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짐이 늘어나 결국 발병한다. 돌아보면 내게 필요한 것이 한 줌이나 될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내려놨어. 그것이 이 길이 가르쳐 준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2. 처음에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생각이 들 거라고 생각했다. 길을 걸으면 인생이, 생각이 정리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도도 해봤다. 그러나 하루, 또 하루가 지나면서 걸으면서 생각하는 생각은 점점 단순해져 갔다. 결국 ‘다음 도시는 얼마나 남았지?’ 오늘은 어디서 잘까? “뭐 해 먹지?” 정도. 어제도 내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가져오는 평안. 3. 하루 평균 2040km를 걸었다. 보통 7시경 일어나서 전날 준비해 둔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 그리고 출발. 점심은 보통 바게트에 초리소, 하몽, 치즈 등을 곁들인 샌드위치다. 1, 2시간마다 신발까지 벗고 쉬면서 발을 식힌다. 그날은 목적지에 이르면 오후 3시에서 5시 전에 도착한다.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구경도 하다. 작은 마을은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기도 하고, 큰 마을은 미술관이나 백화점도 있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을 잔다. 보통 저녁 8시경에는 잠자리에 든다. 길에서 만난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늦는 날도 있다. 새벽에는 다리가 아파서 자꾸 잠이 깬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이 들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가 대부분이어서 추위가 엄습한다. 아침이 오고, 또 다음 도시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4.스스로 준비한 첫 번째 저녁 식사는 재난이었다.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면과 토마토 페이스트를 사다가 물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처음에는 과일도 잘 깎지 못했다. 그래도 저녁은 거의 직접 만들어 먹었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도 있었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요리를 했다. 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어떤 나라의 슈퍼마켓은 그 나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옆 사람의 어깨너머로 따라하면서 요리 실력도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토마토 파스타, 그 다음에는 까르보나라, 그 다음에는 카레도 해 먹고 칠면조 고기로 돈가스도 만들어 먹었다. 채식주의자인 호주 아저씨와 잠시 동행하면서 우연히 함께 채식을 하기도 했다. “요리는 내가 하루 중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활동이었다.” 5.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다. 서로의 지저분한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다. 만날 때마다 부엔카미노라고 인사한다. 좋은 길이 되라는 순례자의 인사말이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호주, 독일,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미국, 체코, 아일랜드 등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나이도 성별도 인종도 각양각색이지만 모두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금세 친구가 된다. 가끔은 함께 저녁을 준비해 식사를 하기도 한다. 각국의 음식이 선보여집니다. 까미노에서는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 것을 나눈다. 다리가 아픈 친구에게 자신의 남는 신발을 주고, 몸이 아픈 친구에게 가져온 상비약을 내놓는다.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가 있으면 함께 밥을 먹는다. 나는 아직 여행 첫날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을 오르며 굶어 죽을 것 같았던 나에게 내 빵을 내줬던 천사 같은 호주 아줌마를 잊을 수가 없다. 여기서는 소유보다는 사용이다. 모든 물건은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것이 맞다. 6.첫 며칠은 괜찮았다. 3~4일이 지나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걸음걸이가 틀어지자 종아리, 허벅지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길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하루에 10km를 걷는 것도 힘들었다.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한 작은 마을의 한 잡화점을 발견했다. 지팡이가 있었어. 정말 기뻤어.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기쁜 일이었어. 보물처럼 느껴졌다.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조금 더 큰 도시를 지날 무렵, 줄 서 있는 상점에서 똑같이 생긴 지팡이를 1/3 가격에 팔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평소 같으면 아깝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길 위에서 다음 도시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바로 다음 도시에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열흘 뒤에 만날 수도 있고, 길을 마칠 때까지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 그 순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행복했고, 그 하루 동안 큰 도움을 받았어. 그거면 충분해. 나에게는 오직 오늘만 있어. 잘 수 있을 때 자두었다가 쉴 수 있을 때 충분히 쉬어야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야 한다. 길 위에 까미노 이야기 동운(2014)은 어떤 계기였을까. 신기하게도 그 부분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한 조각의 글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셋째 누나가 “인생이란 없다”고 외친 동생에게 떠나라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을 선물한 게 시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길지만 지난한 시험 중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연수원 4학기 시험을 앞두고 나는 스페인에 있다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매료되었다. 산티아고는 야곱의 스페인식 이름이고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야곱길. 야곱이 걸었던 전도의 여정.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에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시간씩 인터넷을 뒤지며 여정을 준
쇠도 녹슬어 아들 딸 넷을 키우면 손자가 줄을 선다. 첫 번째 동영은 직장 때문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태몽까지 꾸어주며 “낳으면 봐줄 테니까 빨리 낳아라”라며 첫 손자 호진을 본다. 산후조리원에서 외가로 돌아와 6세까지 자랐다. 둘째 딸 동향도 워킹맘으로, 첫째 은솔 역시 아직 호진이가 있는 외갓집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우리 아이 4명을 키운 철인의 노하우로 손자들 정도… 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아.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역부족이라 아직 함께 있던 막내 이보경에게 육아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게 됐다. 지난 2012년 2월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안방 침대에 누워 이름처럼 영롱한 은솔을 들어올리며 그 웃음에 젖어 있지만 할머니는 윗가슴이 뻐근함을 느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신경이 쓰여 며칠 만에 인근 병원에 갔다. 유방암 소견이래 암? 나도 암이? 그제서야 아버지께 알리고 서울대병원에 갔다. 여러 정밀 진단 결과 초진 소견대로였다. 암? 마음이 대담해져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는 암도 감기만도 못한 법이다’라고 확신을 갖고 중얼거렸다. 내 몸을 돌볼 새도 없이 고단했던 삶에서 하나님은 휴식을 주려고 하셨을 것이다. 이 집 식구가 된 지 37년-어렸을 때부터 종합병원이었던 시어머니와 함께 7인 가족이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 본래 건강한 체질로 이 가정의 병마를 몰아냈는지 우리 집은 입원할 가족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철인인 내가 녹이 슬었던 것이다. 항상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대가족을 아껴왔지만 겉은 멀쩡한 채 안에서 녹이 슬었던 것이다. 호진이도 우리 엄마가 휴직하셔서 같은 동이지만 우리 집으로 갔고, 은솔이도 김포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시모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잠시 따로 오시도록 했다. 충주의 딸 집도 마땅치 않고 큰아들 집도 마찬가지여서 어려서부터 키워온 손녀 은숙의 집을 섬겼다. 서로가 불편한 줄 알면서도… 그 질척질척한 머리카락은 며칠만에 힘없이 떨어진다. 딸들이 급하게 새로 만든 가발이 정말 잘 나왔다고 한다. 가발을 벗은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준 것도 오래 전이었다. 삼양로 안길과 정릉을 거쳐 서울대병원에 이르는 성북동 길은 사계절 내내 시골 고향 동네 길처럼 익숙해졌다. 암병동에는 창경궁이 벽화처럼 펼쳐져 있다. 신록이 짙푸른가 하면 어느새 푸르름이 지고 단풍이 들게 되면 하얀 눈 이불을 덮는다. 그동안 항암치료가 잘됐고 수술도 쉬웠다고 한다. 수술 전 나쁜 날에도 기도실에 모여 밤을 지새운 우리 여성선교회 회원들의 기도와 그때마다 간청하신 목사님의 기도를 잊지 못한다. 옆까지 전위한 줄 알았던 환부가 열어보니 깨끗한 것이다. 보경도 은도 병상을 지키며 어머니와 애틋한 정을 나눈다. 혹시 달렸던 동영과 동향도 뒤지지 않기 위해 드나든다. 암이라는 적군을 물리치는 데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는 아이들은 든든한 원군이 된다. 이날까지 물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던 아버지가 인터넷에서 찾은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가리는 데 서툰 솜씨로 건강식을 만드는 건 차라리 내가 만드는 게 낫지만 그 정성이 양념이 된다. 숲 냄새가 도움이 된다며 개발한 우이동 골짜기 산책로를 늘 바쁘기만 했던 아버지와 함께 찾는다. 봄에는 새싹과 함께 희망을 키우고, 여름에는 돌 틈에 부서지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가을에는 단풍 절경 속에서 은행과 도토리에 묻은 기쁨을 한껏 줍는다. 춥지만 겨울에도 마음에 걸리고 그리워 눈길을 끈다. 약 2년 만에 4단계 치료를 모두 마치는 날, 그동안 단골이었던 암병동 4층 카페에 “오늘 제대한다”며 상기된 얼굴로 차를 주문했다. 아빠가 연한 커피를 좋아해서 양을 적게 해야 하는 것도 잘 아는 여직원은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다음에는 좋은 곳에서 만나요. 코끝이 찡하다. 응, 고마워. 이런 데서는 다시 만나지 말자…친정-작은 올캐와 형, 그리고 양화 누나와 형부, 목동 누나와 형부는 좋다는 약초와 식품을 계절에 따라 모두 모아 보내는 친정어머니이자 아버지였다. 주치의를 자주 만났고 시설이 좋은 병원에서 좋은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정성껏 보살핀 교우들, 좋다는 음식과 기도로 많은 사랑을 담아주신 안광순 권사님과 엄재룡 권사님의 사랑은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발병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절에 따라 유기농 식품을 준비해 주는 큰 사돈과 둘째 사돈의 따뜻한 정은 사돈 사이를 뛰어넘는 진한 것이었다. 딸과 딸 보경이를 낳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언니 둘은 출가했고, 은이는 군 복무 중이라 오직 혼자 어머니 곁에 남아 시종일관 집안일과 어머니의 건강 식단을 책임지고, 24시간 옆에서 함께하며 기도하는 보살핌이 천사였다. 내가 잠든 사이에도 품고 계신 하나님께 매달려 있던 그분들의 기도는 모든 것을 아우르며 치유의 은혜로 나를 감싼 것이다. 하나님께 빚진 자이지만 그들에게 또 사랑의 큰 빚이 있다. 자취를 감췄던 머리카락이 서서히 난다. 딸들은 앙드레김 같다고 놀렸지만 머리카락과 함께 모두의 기쁨도 커진다. 할머니도 돌아오고 수유본부는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간다. 올 봄에는 병동에서만 바라본 창경궁을, 언제 갔는지 모르는 창경궁을 아버지와 손잡고 함께 걸으며 예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사이 보경은 남편을 만나고 막내도 판사 임관을 거쳐 엄마가 얼굴처럼 예쁜 아내를 맞이하며 동영은 둘째 호연이를 낳고 동향이도 둘째 은하를 낳아 모두가 외할머니의 손을 거친다. 그동안 많은 역사가 또 쓰여 있었구나. 때가 되면 현관에 신발이 더 많아져 마치 반상회 날처럼 웃음이 되살아나지만 녹을 닦은 어머니는 새 머리카락처럼 전과 같지가 않네. 쇠도 녹슬어 아들 딸 넷을 키우면 손자가 줄을 선다. 첫 번째 동영은 직장 때문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태몽까지 꾸어주며 “낳으면 봐줄 테니까 빨리 낳아라”라며 첫 손자 호진을 본다. 산후조리원에서 외가로 돌아와 6세까지 자랐다. 둘째 딸 동향도 워킹맘으로, 첫째 은솔 역시 아직 호진이가 있는 외갓집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우리 아이 4명을 키운 철인의 노하우로 손자들 정도… 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아.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역부족이라 아직 함께 있던 막내 이보경에게 육아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게 됐다. 지난 2012년 2월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안방 침대에 누워 이름처럼 영롱한 은솔을 들어올리며 그 웃음에 젖어 있지만 할머니는 윗가슴이 뻐근함을 느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신경이 쓰여 며칠 만에 인근 병원에 갔다. 유방암 소견이래 암? 나도 암이? 그제서야 아버지께 알리고 서울대병원에 갔다. 다양한 정밀진단 결과
2013년 3월 8일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 햇살이 하늘거릴 때 새싹보다 먼저 영롱한 보석이 붕괴되었네 화사한 봄 햇살에 피어오른 따뜻한 솜사탕이나 우는 아이, 눈물을 씻고 웃는 아이, 기쁨이 되었다 당신 황량한 몽골 사막과 세계 곳곳에 사랑의 향기를 내뿜고 아름다운 비둘기가 되어 누나, 여동생을 내보내고 어머니를 돌본다 아버지 위에 오른 당신은 흐름을 거스르는 연어이며 아름답고 힘찬 행진 이제 어머니 품에서 어쩌면 마지막 3월 8일에 감사드립니다 보경을 주시고 또 그를 인도하시니 내가 어디에 있든 주님의 나래 안에 품어 주시고 이후의 삶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승리를 허락하여 우리 주님의 선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2013. 3. 8. 너의 사랑 나의 기쁨 엄마 아빠가 2013년 3월 8일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 햇살이 하늘거릴 때 새싹보다 먼저 영롱한 보석이 무너졌네 화사한 봄 햇살에 피어오른 따뜻한 솜사탕이나 우는 아이, 눈물을 씻고 웃는 아이, 기쁨이 되었다 당신 황량한 몽골 사막과 세계 곳곳에 사랑의 향기를 내뿜고 아름다운 비둘기가 되어 누나, 여동생을 내보내고 어머니를 돌본다 아버지 위에 오른 당신은 흐름을 거스르는 연어이며 아름답고 힘찬 행진 이제 어머니 품에서 어쩌면 마지막 3월 8일에 감사드립니다 보경을 주시고 또 그를 인도하시니 내가 어디에 있든 주님의 나래 안에 품어 주시고 이후의 삶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승리를 허락하여 우리 주님의 선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2013. 3. 8. 당신의 사랑 나의 기쁨 엄마 아빠가
(계속) 가족 문집 신동네 애기 2편 : 세상애 3편 : 하늘 사랑 <책주문 : [email protected] / 010-9220-8009> (계속) 가족문집 신동네 애기 2편 : 세상애 3편 : 하늘 사랑 <책주문 : [email protected] / 010-9220-8009>